아이들의 변화를 인정하자

제 목
아이들의 변화를 인정하자
작성일
2000-03-8
작성자

예사롭지 않은 교실 풍토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얼마 전 어느 지역 학부모 단체에서는
지역 교육청에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회초리를 기증하였다. 다행히 그 지역 교육
청에서 더 열심히 가르치라는 뜻으로만 이해하고 회초리를 접수하지 않았으나, 아이들
을 때려주지 않아서 요즘 아이들 버릇이 나빠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 지역 학부
모들 사고 방식이 참 답답하였다.

그런데 요즈음 어떤 정당과 교육 단체에서는 62세로 단축된 교원 정년을 한 살 늘리거
나, 다시 원래대로 환원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부모와 교사들이 아이들을 잘 다루지
못해 학교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교사들이 의기소침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은 전직
교육부장관이 교원 정년을 줄이는 바람에 학교 교육이 망가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답답하기로 따지면 회초리를 전달한 학부모 단체보다 이 사람들이 더욱 한심하
다. 80년대 ‘민주화 열기’ 이후 아이들이 변하자 ‘교복 자율화’ 때문에 애들이 나빠졌
다고 다시 교복을 입히던 사고방식에서 조금도 진전된 것이 없다.

요즘 교실 풍토는 그야말로 올 것이 온 것뿐이다.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각 기업에서
살려달라고 매달릴 때 ‘무너질 것은 무너져야 한다.’고 하며 정부에서는 ‘부실 회사
정리, 임직원 해고’를 과감하게 단행하였다. 그런 식으로 표현하자면 학교도 지금 무
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 실물 경제에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서 그때 경제와 같이 정리되지 않았다가 요즘 무너지고 있는 것뿐이다. 지금 이것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만큼 교육에 돈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서서
히 무너지게 하지 않아 기존 질서가 한꺼번에 무너지니까 사람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무너진 질서를 딛고 새로 건설될 질서는 지금 우리가 이 상황을 어
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황폐해진 교육 문제를 아이
탓으로 돌리거나, 교사와 부모 탓으로 돌리면 앞으로 우리는 21세기를 살지 못하고 20
세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뒤쳐지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양
성과 변화를 인정하여 제도적으로 이 변화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21세기는 상대방을 진
심으로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니 교육 부문에 돈을 들여 교실을 더 많이 짓고, 교사를 더 많이 뽑고, 아이들의
개성과 창의를 더 살려주고, 아이들의 고민을 더 들어주고 모든 일을 아이들과 상의하
는 사회로 가야 한다. 아이들은 통제 대상이 아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귀하게 대하
면서 아이들에게 남을 귀하게 대하라고 일러주어야 한다. 인간적인 정이 오고 가지 않
는 교실에 컴퓨터 한 대를 넣어주고 정부가 나 몰라라한다면 ’21세기 한국’은 기대하
기 힘들다.

나라에 돈이 없어서 교육에 당장 투자하기가 어렵다면, 우리 앞에 놓인 난제를 어떻
게 풀 것인지 학부모, 학생, 교사, 교육 전문가, 정책 입안자가 모여 같이 상의할 수
있는 틀이라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육부장관 혼자 결정하고, 교육감 혼자 판단하
고, 학교장 혼자 책임지는 틀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에게 그나마 조금 남아있는 것조
차 엉뚱한 곳에 허비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 악습이 계속되면 앞으로 우리도 미국
어느 도시처럼 학교에 갈 때 총으로 무장해야 할지 모른다. (1999.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