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진짜 위하려면…

제 목
청소년을 진짜 위하려면…
작성일
2000-03-8
작성자

인천 호프집에서 중고교 학생들이 참변을 당한 후, 사회 일각에서 청소년을 위하자는
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청소년들 갈 곳을 마련해주자고 청소년 전용 콜라텍을 짓는 자
치 단체도 생겼다. 당하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셈이지만 뒤늦게나마 발 벗고 나서
는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다. 시작한 김에 어떤 것이 청소년을 진정으로 위하는
것인지를 어른들이 진지하게 검토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부천시에서는 여주에 있
는 폐교를 청소년 수련실로 활용하려고 몇 억 예산을 들여 그 학교를 고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추진하는 분들이 부천 청소년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부천 청소년들에게는 경치 좋고 물 맑은 곳, 훌륭한 시설이 필요한 것
이 아니다.

부천 복사골 문화 센터에도 청소년 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나 아이들이 집 놔두고
돈 들여 그곳에서 잘 만한 이유가 없으면 그곳을 절대로 이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좋은 친구와 함께 마음 편히 수다떨 장소만 있으면, 공기 다섯 알만 가지고도 하루 종
일 잘 놀 수 있다. 그러니 여주 폐교를 아무리 잘 꾸며 놓아도, 복사골 문화 센터가
아무리 시설이 훌륭해도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으면, 산꼭대기에 미술관을 짓고
산꼭대기에 도서관을 짓는 것과 똑같다. 그렇게 되면 공무원 업적은 있으되, 건물 이
용자는 없게 된다.

더구나 지금 부천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교 건물은 밤에 비고, 학
원 건물은 낮에 빈다. 동사무소 건물은 일요일에 놀지만, 교회 건물은 평일이 한가한
편이다. 시청과 교육청, 구청, 검찰청 건물 로비는 아주 화려하고 넓다. 그런데도 누
구 하나 청소년들에게 그 시간에 그곳을 이용하라고 손짓하는 사람이 없다. 말하자면
지금 부천 청소년들은 갈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라는 사람이 없는 것뿐이다.

그러니 부천시에서는 청소년 수련실을 짓거나 건물을 세우는 하드웨어로 업적을 만들
려고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비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어떻게 하면 ‘있
는 건물, 죽은 공간’을 살려 부천 청소년을 도와 줄 수 있는가를 궁리하여야 한다.
마침 올해부터 동사무소를 주민 자치 센터로 바꾼다고 한다. 그곳에 청소년들이 아무
때나 마음놓고 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 청소년들을 도와줄 강사와 사회복
지사를 뽑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학교장과 학원장, 목사님, 동장님이 청소년
을 서로 데려가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수 있도록 부천시에서는 제도를 정비하고 예산
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

묻지 않고 청소년 동아리에게 활동비를 팍팍 지원해줘 보라. 당장 부천 청소년 범죄율
이 뚝 떨어지고, 왕따와 학교 폭력 현상이 사라질 것이다. 아마 그렇게 되면 부천 청
소년들은 부모님이 다른 도시로 이사갈까봐 불안해 할 테고, 이런 좋은 여건을 만들
어 준 사람이 나중에 밝혀지면 도시락을 싸들고 쫓아다니면서 고마워할 것이다. 그게
바로 어른들이 진짜로 청소년을 위해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