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나무라기 전에…
지금 기성 세대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를 이야기하면, 콩깻묵으로 끼니를
때웠다는 왜정 시대 이야기 이상으로 학생들이 무척 신기해 한다. 왜정 시대야
벌써 오래전 이야기라 그 고통을 짐작할 뿐 현실감이 닿지 않지만, 80년대에 태
어나 지금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에겐 자기들의 어린 시절과 연관하여 그
짧은 시간의 변화가 퍽 재미있는 모양이다.
예를 들어 껌대신 밀을 씹으며 빨간 크레용을 조금 떼어 함께 씹으면 빨감 껌
이 된다던지, 어떻게 해서 얻은 진짜 미제 껌을 형제가 돌려가며 씹다가 책상 밑
에 붙여 놓고 학교 갈 때 잽싸게 먼저 입에 넣고 간다던지, 학교에서 분유를 타
다가 그릇에 담고 떡찌듯 쩌 먹었다던지 하는 것들이 코미디에나 나올 법한 이야
기라는 것이다.
이쯤이면 학생들도 배를 잡는다. “우리 때는 컬러 텔레비전이 있었는데…., 만
년필도 있었고….”하며 그 작은 질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실감하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대견해 한다. 자칫 잘못하여 껌이나 라면없이 성장할 뻔한 불행을 생각하
니 저희들이 행운아라도 된다 싶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학생들은 참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다. 멀지 않은 옛날인
데도 참고서는커녕 교과서도 귀했으며, 부모님이 ‘학교 가지마.’라는 소리를 할
까 두려워 전전긍긍해 하고, 도시락도 없이 책보를 멘 채 새벽길을 멀다하지 않
았고, 치분(가루 치약)의 달콤한 맛이 아까워 이를 닦고 입 안 헹군 물을 삼키
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 어려운 시절을 보냈던 오늘날의 부모들은 그 전 세대와는 또다
른 이유로 공부에 한이 맺힌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의 물질적 풍
요를 위해 정신없이 목표와 결과를 보며 달려와 이제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
긴 사람들일수록 자식들이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 같다.
공부라는 종교의 열렬한 신도가 되어 간다. 공부만 잘한다면 옛날처럼 밭일을
시키랴, 신문 배달로 가사를 도우라고 하랴? 서울로 위장 전입도 하고 이왕 서울
일 바에야 명문 학군으로 간다. 어릴 때부터 시작한 각종 유아 교육의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믿으며 산다. 할 수 있으면 몇 백만 원짜리 과외도 시키고 몇 억짜
리 기부금이라도 낼 판이다.
그러나 그런 부모의 마음도 모르고 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요즈음 학생들
이 느끼는 현실은 어른들의 생각과는 다른 것 같다. 그 좋은 환경이 복에 겨워
서 사흘에 한 명꼴로 자살을 한단다. 부모의 간섭과 꾸중이 싫어서 가출을 한단
다. 부모는 ‘꼭 좋은 대학에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아이들
은 ‘나는 꼴찌라 시시한 대학에도 갈 수 없다.’라는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해서
부모를 피한단다. 부모는 날 보고 좋은 친구를 사귀라지만 정작 그 애는 또 더
좋은 친구를 사귀려고 나를 상대해 주지 않아서 혼자 놀 수밖에 없단다. 그래서
술 담배를 하고 본드를 마시며, 학교도 없고 부모도 없고 선생도 없고 입시도 없
는, 그저 꿈 같은 환각의 세계로 간단다.
가끔 학생 문제로 학부형들과 만날 기회가 있어 이야기해 보면 한결같이 부모
노릇 하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지금이 보리밥 먹고 무 깍아 먹던 옛날 같지
도 않고 애들도 옛날과 달라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나도 부족한
것 없이 해줬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고 강변하는 분도 있다. 특히 누구보다
도 우리 애를 내가 잘 안다며, 우리집 애들에겐 고민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고
자신하는 부모들일수록 어느날 벌어진 이 일을 아예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으면, 학부형들의 원인 진단은 간단하다. 사회가
그 전같지 않고, 나쁜 친구들도 많고, 교복과 머리 모양을 자율화해서 그러며,
학칙이 옛날같이 엄하지도 않아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어림도
없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 애들이 누리던 모든 자유와 편의를 엄격히 통제하
여 본때를 보여 주겠단다. 말하자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금보다는 꽉 잡혀서
조용했던 옛날 정치가 더 좋았다는 것인데, 애들을 엄하게 키우겠다는 것도 알
고 보면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는 식으로 꼼짝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학부형은 옛날에 비해 요즘 애들이 강인하지 못하고 심약해졌다고 한다.
냉장고를 열기만 하면 언제든지 먹을 것이 있고, 전자 오락과 같은 잠깐의 즐거
움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꼭 그런 같지는 않다.
요즈음같이 열악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어 내는 세대도 일찍이 없었기 때문이
다. 물질적으로 넉넉지 못해 비교적 삶의 속도가 느렸던 과거에는 생각조차 못했
던 일들이 지금은 얼마나 많은가? 집안에선 강도와 성폭행의 두려움, 문을 나서
면 유괴와 인신 매매의 공포, 공해와 오염으로 찌든 물과 공기, 저마다 바쁜 속
에서 혼자라는 절망감, 어제의 적대국이 어느 날 갑자기 우호국으로 바뀌는 당혹
감, 불확실한 미래와 빠른 변화, 교통 통신 컴퓨터 망이 거미줄같이 짜여진 세
상. 이런데도 요즈음 아이들이 미꾸라지 잡던 옛날 아이들보다 강인하지 못하다
고 할 수 있을지? 오히려 요즈음 청소년의 정보량이나 정신 연령은 옛날보다 훨
씬 높고도 넘칠 지경이다.
어른들이 너무 안이하게 아이들 세계나 청소년 문제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다가오는 미래의 빠르게 변화하는 생활 방식은 사무 자동화니 전산화니 하며 받
아 들이면서,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또 다르게 내일을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자라던 옛날 사고 방식 그대로 가르치려고 한
다.
기성 세대부터 먼저 반성해야 한다. 흡연의 해독성을 일깨우기 전에 왜 아이들
이 담배를 피우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 좋은 환경에서 무슨 불만이 있
냐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착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옛날에 별 탈없이 자기 혼
자 자랐다고 생각하는 것도 큰 오산이다. 더불어 함께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기
억하지 못할 뿐이다.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아이들 눈높이로 아이들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집 애들이 나빠진 것을 다
자기 탓으로 여기지 않으면 지금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