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하고 쉽게 쓰자.
현대를 매스 커뮤니케이션 시대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어떤 사실이나 생각이
제대로 오고 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
면 사람들이 알아들어야 하는데…”라고 한탄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안타
까워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른들이 ‘그러면 안 된다’라고 하면 청소년들이 ‘그
렇게 하지 말자’로 받아들여야 할텐데, ‘왜 저런 말을 할까,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현대 사회의 가치관이 바뀌면서 사람끼리 대화가 단절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네 언어 생활은 그
런 거창한 이유보다는 주어진 말글을 제대로 부리지 못해서 의사 소통이 안 되
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한 쪽에서 통일을 이야기하면 또다른 쪽에서는 용공을
떠올리고, 한 쪽에서 파업을 주장하면 다른 쪽에서는 진압을 생각하는 식이다.
그러나 언어를 부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내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방
일 수밖에 없다. 가령 외국인과 만나 영어로 이야기할 때 그 외국인이 내 말을
못 알아들어 내가 처음에 의도했던 내용을 전혀 전달할 수 없었다면, 내가 말을
한 마디도 안 한 것이나 다름없다. 마찬가지로 한국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생각
하는 것을 완전히 이해시킬 수 없었다면 내가 언어를 제대로 부리지 못한 것이
다. 그러니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상대방을 원망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언어를 어떻게 부려야 할까? 세종대왕께서 일찍이 말씀하신 대로 언어
는 쉽게 익혀 제 뜻을 펴되 편안하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더 간단히 줄이자면 상
대방이 알아듣게끔 쉽게 말하고, 쉽게 쓰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사대
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산다. 훈민정음(한글) 창제 이후 몇 백년 동안 중국
한자를 떠받들고 살다가, 또 얼마 동안 일본말에 치이다가, 지금은 영어를 숭배
하고 산다.
다른 나라 언어학자들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글자를 놔두고 제 백성에게 모두 영
어를 익히게 하려고 안달하는 정책 속에서 산다. 우리말로 쉽게 말하고 쉽게 쓰
면 가벼운 사람으로 치면서, 말과 글에 한자나 영어를 섞어 쓰면 유식한 사람으
로 대접하며 산다.
더구나 한자 한 획, 영어 스펠링 하나 잘못 쓴 것은 창피해 하면서도, 한글
로 ‘텔레비전’으로 쓰자고 약속한 것조차 ‘테레비, 텔레비, 테레비젼, 텔레비
젼’처럼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원어 그대로 집어
넣어 ‘TV, television’으로 쓰는 사람도 많다.
옛날에는 한자 사이에 우리말 토씨를 붙여 ‘母親 病患이 重하여 小生은 切痛합
니다.’처럼 썼는데,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mother가 very sick해서 me는
painful합니다.’로 써야 대접받는 세상이 올 것 같다. “한글을 make하신 세종
King을 뵙기가 정말 sorry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