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비평준화 제도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
1998년 12월, 부천교육청에서 조사한 통계에 따르면 그 당시 중학교 1, 2학년
부모의 77%가 고입 평준화에 찬성하였다(반대 19%).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평준
화 제도가 더 낫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이 비평준
화 제도를 좋은 것으로 여겼던 것은 특정 학교가 명문고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거짓 논리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첫째, 그 사람들은 비평준화 제도가 학생들의 경쟁을 촉발시켜 부천 지역 학력
을 높였다고 주장한다. 얼른 보기로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학습 문
제를 풀기 때문에 학력이 다른 지역보다 우수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문제 푸는 기계로 길들여져서 종합적이며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단
계에 들어서면 학습에 더 이상 진전이 없게 된다.
학자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평준화 지역 학생이 비평준화 지역 학생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학습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
아이보다 초중학교 때 다양하게 활동하던 아이가 더 뛰어난 모습으로 고등학교
를 졸업하는 예가 많다. 그러므로 2002년부터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어 개인의 창
의력과 개성을 기준으로 하여 선발하려는 상황을 고려하면, 비평준화 제도야말
로 우리 지역 청소년의 발전 가능성을 죽이는 제도라 할 것이다.
둘째로 명문고가 있어야 명문대를 많이 보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
나 그렇지 않다. 소위 명문고라 하는 부천고에서 한 해 서울대 30-40명(재수생
제외)을 포함하여 ‘명문대’에 130-140명을 보내고 있다. 이 숫자가 한 학교로 따
지자면 많은 듯하지만, 부천 관내 인문고 숫자로 나누면 한 학교에서 각각 15명
안팎으로 보내면 되는 숫자이다. 즉 1류 대학, 2류 대학을 따진다 해도 비평준화
하여 우수한 아이를 모아 놓고 한 학교에서 입학시킨 숫자보다는 평준화로 바꾼
뒤 관내 고등학교 전체에서 명문대에 보내는 학생 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셋째는 공부하는 아이들끼리 모아 놓으면 아무래도 면학 분위기가 좋을 것이 아
니냐고도 한다. 공부하려는 경쟁 심리를 촉발시키는 것을 면학 분위기라고 한다
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사회성을 잃고 학습에만 뛰어
난 성적을 올리는 아이들 때문에 ‘학교 우등생이 사회 우등생은 아니다.’라는 말
이 생긴 것이다.
면학 분위기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함께 연구하며 공들여야 하는 부분이지,
학업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모아 놓는다고 저절로 면학 분위기가 해결되는 것
이 아니다. 제주도 어느 고등학교는 독특한 수업 방식을 적용하여 공부 잘하는
아이가 못하는 아이를 도우며 학습에 재미를 느끼도록 하여 언론에 크게 소개된
적이 있다.
말하자면 면학 분위기를 제대로 만들려면 여건이 닿는 대로 그 학교에 맞는 방
식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지금까지는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
학습을 많이 하여 아이들을 억압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기 때문에 아이들이 학습
에 흥미를 잃게 된 것뿐이다.
학교는 예비 사회로써 아이들이 서로 지니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서로 보완하
는 법을 익히는 곳이어야 한다. 진정한 명문이란 아이들이 지닌 가능성을 극대화
하는 학교이지, 혹독하게 경쟁을 시켜 서로 가능성을 죽이는 곳은 아니다. 그러
므로 어른들은 아이들이 선의로 경쟁을 하여 서로 사는 길로 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처럼 적대적으로 경쟁시키면서 명문고, 명문대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무책
임하고도 잔인한 짓이다. 따라서 학교 간 친목 행사를 통해 경쟁하면서 모든 학
생이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자긍심을 지니고 승리자가 되는 길로 가려면 현행 고
입 제도를 평준화 제도로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