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깨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세상이 많이 달라질 줄 알았는데, 요즘 세상살이나 옛날이나 별
반 다름없는 것 같다. 오히려 어떤 가치가 바른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혼란스
럽기까지 하다. 한때는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물러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그 물러난 대통령들이 아직도 사람을 모으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
다. 제대로 물러나게 한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노조 운동을 하다가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물러나자 좋은 세상이 온
줄 알고 조그만 회사에 취직하였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한 눈 팔지 않고 9년 동
안 열심히 근무하였는데, 아이엠에프가 터지자 지금 근무 태도와 상관없는, 9년
전 노조 운동을 빌미로 해고시키려고 한단다. 억압받던 시절 열심히 활동한 것이
므로 정권이 바뀌었으니 영광스러워야 하는데도 그 경력이 여전히 굴레로 남아
있는 것이다.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그 이유를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는 이
렇게 설명하였다. 새로이 들어선 정부가 노동자를 배려하지 않는 것은 노동계가
새 정부한테도 결코 지지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처음부터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러 노조 파업 때 정부가 언론을 끌여들여 노동계와 시민
을 분리시키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걱정스럽다. 많은 시민 단체들이 그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여론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시민 단체의 이성조차 마비된 것 같다. 그나마
온건한 시민 단체는 정부가 제공하는 당근에 빠져 말 한 마디 변변히 못한다. 문
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단체는 사람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
는 언론에서 떠드는 엔지오(NGO) 열풍도 결국 거품이라고 하였다. 권력과 자본
의 입맛에 길들여진 엔지오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될 것이고, 어려운 사람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 아이엠에프 체제 이후 우리 사회 중산층이 무너졌
기 때문에, 소수가 사회적 부의 절대량을 소유하는 상황이 빠르게 진전되고 있
다. 특히 우리 나라는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변변한 사회적 보장 제도가 없다. 그
런 상황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진다면,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이제 사람답
게 살기는커녕 죽지 못해 살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없는 사람을 위해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
다. 오히려 똑똑한 놈이 최고이며,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생산적인 것이 가장 아
름답다는 식으로 모든 사람을 경제 전장으로 내몰고 있다. 옛 정부가 ‘체력이 국
력’이라고 외치며 정상적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국민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던 태도와 너무나 닮았다.
‘강한 것을 아름답게 보는’ 세상에서는 사람들에게 밀림의 법칙이 적용된다. 말
하자면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힐 일만 남은 셈이다. 정권 교체가 되었는데도
삶의 질이 달라지지 않았던 것은 결국 새 정부라는 이름도 그 밥에 그 나물이었
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동춘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시민 운동을 더욱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강
조한다. 특히 권력과 자본이 여성의 역량을 소비 쪽으로 몰고 있는데 시민 단체
가 그런 상황을 막아야 하며, 그러려면 시민 단체가 지역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과 연대하여 정보를 공유하여 힘을 키워야 하고, 몇몇이 운동하던 방식
에서 벗어나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한다고도 하였다. 여러 노조가 번
번이 파업에 실패하는 것은 시민과 공유할 수 있었던 부분이 없어서 정보를 독점
하고 있는 권력과 자본에게 먹힌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논리라면 시민 단체는 앞으로 여성의 잠재력을 끌어내 시민 운동의 동력으
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 지역 시민과 여성의 역량을 어떻게 모으느냐에 따라 다
가올 21세기 사회를 시민 사회로 만드느냐, 자본과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드
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일수록 시민들이 힘을 모아 나서
야 한다. 국민들이 똑똑해지지 않으면 아무도 국민들을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