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자 비판하기 2

제 목
동업자 비판하기 2
작성일
2001-05-7
작성자

제가 올린 글을 수정해달라는 하이텔 교사 동호회 대표에게 제가 보낸 글입니
다… (1994년)

대표 시삽님께
안녕하십니까? 보내 주신 메일은 반갑게 받아 보았습니다.
제가 보낸 글에 대해 제 이름으로 받아 본 두 번째 답장인데 다른 한 분은 제가
진짜 교사냐고 묻더군요. 운영자 대표로 수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
을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기초며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
야할 때라 발표한 것뿐입니다.

우연한 일치이겠으나 마침 어제(12일) 아침자 한겨레 신문 1면 <한겨레 논단>에
도 교사들의 촌지에 대한 불감증이 언급되어 있고, 오늘(13일) 일요일자 독자란
에도 교사들의 촌지에 대한 이중성에 대해서 개탄한 글이 있습니다.

아마 대표님께서 제게 요구하는 것은 촌지에 대한 의견이 아니라, 교사 입장에
서 교사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 달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글에 문제가 있다
고 하시는데 그것이 대표님의 주관인지, 단체의 입장인지 저로서는 보내주신 메
일만 가지고는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제 지난 교육 경험 중엔 우리 선배 교사들이 젊은 여교사의 뺨을 때리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배들이 잘못된 현실
을 시정하고자 교장이나 교육 관료에게 바른 말을 했다는 소리는 듣기 어려웠습
니다. 아니 상급자는 차치하고 후배 교사들에게 바른 방향을 일러 줬다는 소리
도 없습니다. 지금도 여교사들의 기를 죽이는 용기만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
다.

그런 분들은 누구의 얼굴에 침을 뱉은 것입니까? 그분들이 과거에(혹은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제 몫을 했더라면(한다면) 오늘날 우리 교육 현실이 이렇게까
지 어려웠겠습니까? 많은 선배 교사들이 수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
게 한 사실은 간과하시며, 사람같지 않은 사람에게 사람이 아니라고 표현한 것
만 직설적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저를 탓하고 있습니다. 돈을 건넨 것과는 상
관 없이 부모에 아이들까지 실제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계십니
다.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분이 많습니다. 그 이야기는 고조선 때도 나왔을 것입니
다. 제가 분노하는 것은 자신 주변부터 변화 시키려는 노력 없이 항상 주변을 탓
하는 교사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역사가 주인이 되어 나
를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분이 많지요. 제가 올린 글은 부천 고등학교에 대한 이
야기가 아닙니다. 다시 읽어 주십시오. 이론만 앞서고 실천하지 않는 지성인들
을 질타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님 촌지 받지 맙시다.”라는 이야기는 전교조가 생기기도 전부터 나온 이야
기입니다. 저역시 점잖게 그렇게 한 번 짚고 넘어갈 수 있었겠죠. 그러나 지성인
은 웬만한 표현에 자극받지 않습니다. 지금의 아무리 나쁜 상황이라도 어떻게 처
신하는 것이 나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바꾸
어 말씀 드리면 교직원 조회에서 학교장이 전 직원에게 “개…”운운 했다면 그
날 저녁 근처 술집의 매상고가 달라집니다. 술에 취해서 다들 한 마디씩 욕은 하
겠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다들 합리화에 바쁩니다. “얘기 한다고 듣겠냐?”, “누가 그 얘기를 할래?”, “둘
이 가자, 아니야 교장실에 단체로 들어가자.” 그리고 그 다음 날 실천에 옮기는
것은 자신의 게껍질 속으로 더 깊숙히 숨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
교육의 현실이었습니다. 점잖게 쓰면 잠깐 생각하고 또 구렁이처럼 점잖게 잊지
요.

어느 분은 촌지 문제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 통계상으로는 교사들의 대부분이 그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살고 있습니
다. 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일부 교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
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난이니까 점잖게 기본 예절을 지키자구요? 모두 다 알고 있는 사
실이라지만 그래도 한선생이 그럴 수 있냐구요? 옆에서 돈봉투 챙기는 걸 알면
서도 애들이 알까봐 쉬쉬 하자구요? 어디까지가 교사입니까? 누구까지가 교사
입니까? 욕하는 입은 선생답지 않고, 양심이 썩은 것은 안 보이니까 할 수 없습
니까? 사회가 이 모양이라 나도 어쩔 수 없으니 사회가 정화될 때까지 할 수 없
다구요? 그러면 학교(교사,기성세대)가 이 모양이라 학생들도 할 수 없이 그렇
게 행동한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대학 나온 지성인(교사)이 그 나이에 할 수 없다면 대학엔 아직 가지도 않았고
철 들지 않은 미성년으로서 우리 학생들은 이 현실에 절망할 수 밖에 없다는 사
실을 모르십니까? 간 밤에 엉망으로 취해 망가진 우리 선생님이 어떤 종류의 사
람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다 알고 있는데, 아침에 양복으로 말끔하게 한 겹 덮고
계속 점잖은 척 하자구요? 그래도 한선생이 그러면 안 된다고 할 때의 기준은 뭡
니까?

그 글은 우리 아이들이 보아야할 교사들의 반성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실제로
컴퓨터 통신을 통해 제가 지금 가르치고 있는 부천고 학생들이 보기도 합니다.

대표님.
저는 지난 세월을 다른 교사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움 속
에서 묵묵히 일하는 헌신적인 선생님들을 지금도 많이 알고 있으며 그분들에 대
한 믿음이 변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그분들을 욕되게 하자는 것이 아닙
니다. 나이 40이면 불혹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제 40이며 혹하지 않겠습니다.

그 단체의 입장에서 제 글을 어떻게 하는 것은 백 번 이해 합니다만, 제 글로
인해 제가 무슨 불이익을 당한다 해도 제 글을 수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체 운
영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삭제는 제가 하겠습니다. 제 뜻이 아무리 좋다해
도 다른 분들이 애쓰고 있는 조직의 운영에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