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놀러 오세요…
중고등학생들은 영화 “친구”를 “그저 그런 영화”로 평가하더군요. 다른 영화보
다 특별히 더 감동적이랄 수 없답니다. 30대, 40대가 “친구”를 열광적으로 본 것
과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기성 세대는 그 영화를 보면서 떠올릴 추억이 있지만,
청소년들은 아무런 선입견없이 영화를 영화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겁니다. 청소
년들은 현재와 비교할 과거가 없지요. 그러니까 기성세대가 그 영화를 800만 명
이나 보았다는 것은 지금 겪어야 할 현실이 너무 어려워서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
는 향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근무하던 교직을 올 2월에 떠났지요. 지금은 한적한 곳에서 농
사지으며 살려고 합니다. 제가 그 동안 도시에 살면서 “빠르게 변하는 것”에 적
응하느라고 힘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살벌한 도시 문화를 견디어 내기 어려
울 때 농촌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농촌은 도시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것들이라 마음이 편하지요. 그래서 나이를 먹거나, 경쟁 사회가
싫거나, 심신이 병들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도시를 벗어납니다. 농촌은 지금도
아무라도 안아줍니다.
우리들이 설날이나 추석 때 무지하게 고생하며 고향으로 가는 것도 나이 드신
부모님과 자기가 자란 곳을 보며 익숙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도시에
서 지친 심신을 충전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내와 아이들이 시골 할아버
지 댁에 가기 싫어하는 것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 시
골은 엄청나게 낯설고, 불편한 곳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 고향이라는 곳에 다녀오면 심신이 충전되기는커녕 피로가 쌓이
지요. 그러니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시골에 한 달 동안 보내셔야 합니다. 그러
면 아이들도 그곳과 그곳 사람들에 익숙해지고, 그러면 그곳이 충전하는 곳이
될 테고, 아무리 힘들어도 명절날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고향에 다녀오려고 하겠
지요.
요즈음에는 자식들이 고향에 오느라 힘들다고 부모님께서 아들 내외와 손주가
사는 도시로 오시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자식 사랑” 말고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오신 부모님 대접하느라고 스트레스 때문에 이쪽도 충전이
되지 않을뿐더러, 부모님도 낯선 도시와 낯선 아파트에 지쳐서 시골로 후딱 내려
가시고 싶을 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먹고사느라고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 아파트에서 살아야 하는
데 앞으로도 이대로 살아야 합니까? 도시가 사람을 힘들게 할수록, 또는 사는 것
이 힘들수록 우리가 똘똘 뭉쳐 이제는 도시를 사람답게 사는 곳으로 바꾸어야지
요. 그러려면 우리끼리 마음을 열고, 도시를 정이 넘치는 공동체로 만들어야 합
니다. 뒤에서 흉보지 말고 이웃과 솔직히 만나세요.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고 감
싸주세요. 이런저런 봉사 활동에도 많이 참여하시고, 이웃집이 어려울 때 힘껏
도와주세요. 이웃과 담을 쌓고 지내면 무인도에 혼자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힘드시더라도 일요일날 돗자리를 들고 가족과 가까운 산과 숲, 공원으
로 가세요. 하루종일 나무 그늘 밑에 누워만 있어도 저절로 정신과 육체가 맑아
집니다. 또 생협을 통해 좋은 물건만 받으려 하지 말고 생협 행사에 참여하여 많
은 분들과 만나세요.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사는 여월동으로 놀러오세요. 주
무시고 갈 방과 이부자리를 마련해 놓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