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고 입학하는 것이 기여 입학제라구요?

제 목
돈 내고 입학하는 것이 기여 입학제라구요?
작성일
2002-03-19
작성자

일부 정치인들이 돈을 받아먹다가 들킬라치면 “그 돈은 대가성 없는 돈”이었다
고 하더군요. 그 말을 곧이 듣는다면 대가없이 그렇게 큰 돈을 주는 사람들은
대단한 겁니다. 우리 같은 서민은 종교 단체나 복지 단체에 대가없이 단돈 만
원도 기부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돈을 낸다 쳐도 하늘에서 나를 어여삐 여기시
기를 바라는 면이 큽니다. 말하자면 은근히 대가를 기대하고 돈을 내는 셈이지
요.

이해 관계가 없는 기부라는 것은 참말로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김밥 할머니
가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대학 발전 기금으로 선뜻 내주시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고 아주 감격스러운 미담이지요. 그런 사정을 잘 알면서 몇몇 사립 대
학이 자신들의 명성을 미끼로 하여 기여 입학제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돈을 20
억 원 이상 내주시는 분 자손에게 입학 특혜를 주겠다고 하니, 정확하게 표현하
자면 기부금 입학제를 도입하려는 것이지요.

기부금 입학 제도를 도입하자며 그 대학에서는 대충 이렇게 주장합니다. 오늘
날 대학에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이것저것 해야할 일이 많은데, 돈
이 없다. 정부에 기대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졸업생들이 돈을 잘 내는 것도 아
니다. 김밥 할머니 같은 분은 흔하지 않다. 그러니 해마다 한 20∼30명이 몇백
억 원을 내는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쉽게 큰 돈을 만질 수 있다.

진짜 기여 입학제는 지금도 대부분 대학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국가 유공자,
모범 공무원, 벽지 주민 자녀들이 부모없이 힘들게 공부해야 하거나, 좋지 않
은 여건 속에서 공부하는 형편을 대학이 입학 시험 때 반영하고 있으니까요. 그
러니까 몇몇 대학에서는 그런 좋은 제도에 편승해 목돈을 뭉텅 내주는 사람들
자손에게 특혜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대학의 양심과 도덕성과
순수함을 팔아 손쉽게 돈을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지요.

이 제도를 정말 깨끗하게 운영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출발이 불순한데 깨
끗하면 얼마나 깨끗하겠어요? 어느새 대학 교수님들이 정치인을 닮아 ‘대가성
없는 돈’을 받겠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보통 사람이라면 밥 한끼 얻어먹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는데, 대학이 수십 억 원을 받고 발뻗고 편히 잘 수 있겠어요. 큰
돈을 기부한 분에게 뭐든지 막 해주고 싶을 겁니다. 이해 관계를 떠난다는 것
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요. 더구나 수많은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가지 못
할 때마다 돈이 없는 자기 부모를 원망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몇몇 대학이 자기
네들만 크겠다고 대부분 사람들 가슴에 피멍이 드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입니
다.

그러니 정치인 닮은 교수님들. 제발 좀더 기다리세요. 학벌이 어느 한 사람을
규정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좋은 대학 나온 것을 사람들이 아무런 편견없이
볼 때까지 기부금 입학제를 입밖으로 꺼내지 말자구요. 그래도 들여오고 싶으시
면 돈을 낸 분들이 이해 관계를 따지기 아주 어렵게, 돈을 낸 지 30년쯤 지나
야 특혜를 준다는 항목을 콱 못박아 놓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