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법 가능성 1%

제 목
범법 가능성 1%
작성일
2002-09-11
작성자

그 사회에서 어떤 제도를 갖추느냐에 따라 시민 의식과 생활이 바뀔 수밖에 없
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교통 법규 위반 차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보상금을 주기로
하면서 ‘카파라치’라는 직업이 생겼다. 카파라치들은 일반인들이 교통법규를 자
주 위반할 만한 장소에 숨어서 사진을 찍는데, 심한 경우에는 하루 한 장소에서
불법으로 유턴하는 사진을 몇 천 건씩 찍기도 한다.

그런 경우 그 지역 의원 사무실과 경찰서는 사진 찍힌 사람들이 거는 항의 전화
로 불이 날 지경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진 찍힌 사람들끼리 서로 연락하여 법
적으로 집단 대응하기도 한다. 경찰은 경찰대로 운전자들이 그 곳에서 범법하지
않도록 차선을 고치거나, 장애물을 설치하거나, 안내 현수막을 달기도 하고, 어
떤 때는 교통 경찰이 직접 나와 지도하기도 한다.

카파라치가 교묘한 지점을 찾아 사진을 찍어 이렇게 집단 문제를 만들지 않았더
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루에도 수천 명 운전자들이 여전히 그 장소에서 가슴
을 졸이며 법규를 위반할 것이다. 그리고 경찰은 평소에는 대충 놔두다가, 일제
단속 기간 때는 그 장소에서 쉽게 빨간 딱지를 떼면서 여전히 운전자와 입씨름
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시민은 그 장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조직적으로 항의하지 않고 대부
분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며, 경찰은 문제점을 고치지 않고
문제가 있더라도 어쨌든 운전자가 법규만 잘 지키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무심히 넘
겨 버리기 쉽다.

따라서 선진국과 후진국은 국민성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차이가 있
다. 그 장소에 있을 법한 문제점을 진작에 고쳤더라면 시민과 경찰과 카파라치
가 공연한 일로 서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선진 정도는 1% 가능성을 배려하느냐, 0.1% 가능성을 배
려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1% 가능성이라면 100명에서 한 명이 그 장소에서
범법한다는 말이며, 그곳에 하루에 5000명이 지나갈 때 50명쯤 범법자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그 숫자를 다시 줄이고 또 줄여서 0.1%
로, 0.01%로 낮추어야 한다. 지극히 적은 소수를 배려하는 사회는 선진국이지
만, 10%가 위반하든 20%가 범법하든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회는 후진국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시급히 손보아야 할 곳을 알 수 있다. 학교
를 그만 두는 아이와 왕따로 고통 받는 아이가 굉장히 많으며, 호주제로 피해보
는 사람들과 가족에게 일상적으로 폭행당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통계적
으로 1% 또는 0.1%가 넘으면 그 문제는 개인이 해결해야할 일이 아니라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제도적 문제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 애가 원래 그랬어, 네가 좀 참으면 되잖아, 그 집안 내력
이 안 좋아.”라는 말을 좋아한다면,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우
리는 아직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