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 거부와 민주화운동 관련성
전향 거부와 민주화운동 관련성
박종보 교수(대전 한남대)
여기서는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실관계를 고려하지 않으며, 전향강제반대성 명
을 발표한다거나,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의 다른 적극적 저항행위를 제외하 고,
사상전향을 거부한 행위 자체가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가지는지 여부만 논한다.
[필자주]
1.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는 종교나 세계관에 관하여 중립적이며 특정 한
국가이념을 설정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하에서 국가기 관이
사상전향을 강요하는 행위는 위헌적인 공권력행사이며, 전향을 거부하 는 행위
가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행사하는 행위임은 명백하다.
2.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률 제2조 제1호는 ‘민주화운동’
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
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 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 의 자유
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주 화운동’의
요건은 첫째,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이어야 하고, 둘째, ‘민주헌정질
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이어야 한다.
3. 먼저 전향거부행위가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인가가 문제된다. 양
심의 자유 보장은 전체주의체제를 거부한다. 국가가 국민의 신념을 ‘그르다’ 고
평가하고 ‘옳은’ 이념을 주입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권위주의적 통치’이 다.
그런데 이러한 권위주의적 공권력행사에 대하여 순응하지 않는 소극적인 행위
가 ‘항거’한 것이 될 수 있는가? 모든 경우에 그러하다고 일률적으로 말 할 수
는 없더라도,(필자주 : 그러므로 최종길 교수 사건 결정을 지나치게 확 대해석하
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에서 공권력행사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소극적 불순응이
적극적 저항행위로 인정될 가능성 은 높아진다고 할 것이다. 과거 우리 나라 정
보기관과 교정당국이 진행한 총 체적인 강제전향공작은 수형자의 전향 여부에 따
라 가혹한 폭행, 구금의 극 단적인 장기화, 심지어 생명을 위협하기에 이르는 것
이어서, 이에 불응하는 행위는 일반적으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다.
4. 법률상의 민주화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
장시킨 활동’이어야 한다. 1998.10.10. 개정된 가석방심사등에관한규정(법무 부
령 제467호)이 준법서약서제도를 신설하면서 기존의 전향제도가 폐지됨으 로써
양심의 자유가 불완전하게나마 신장되는 데 많은 좌익수형자들의 전향 거부행위
가 기여하였다는 객관적 사실은 쉽게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행위 자에게 일반
국민의 기본권신장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주관 적 의도가 필요한
가 하는 점이다.
공권력의 위법 부당한 행사에 대한 모든 개인적·개별적·일회적 항의나 시정요구
를 민주화운동이라 평가하게 되거나 또는 피해자의 주관적 인식이나 의도와 상관
없이 그 피해가 결과적으로 국민 의 기본권 신장에 도움을 준 경우면 모두 민주
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하는 지 나친 확대해석에 이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
적은(필자주 : 박영두 사건 결정의 반대의견.)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인권은 자기의 권리를 찾기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 발전
해 왔지, 타인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숭고한 목적으로 헌신한 지사 들에 의
하여 확보된 것은 아니다. 자기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한 모 든 의식적
인 활동은 국민의 권리를 신장하는 활동이 된다.
5. 위 항과 관련하여 좌익수형자들의 전향거부가 사회주의자로서 자신의 사 상
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소신에 찬 행위일 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 하거
나 민주헌정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
다. 이러한 견해는 사회주의 사상은 양심의 자유의 보호범위 내에 속하 지 않는
다는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양심은 “정의와 부정의에 관한 내면에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확신 그리고 그로부터 나오는 일정한 행위와 부작위에 관한 의무감”(독
일 연방행정법원)이기 때문에 그 객관적 내용이 무엇이라고 미리 정해 놓을 수
는 없다.
양심의 자유를 보호하는 헌법은 사상의 자유도 보호한다. 이른바 국시(國是)라
고 하는 강령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헌법 에 위반된다. 물론 양심의 자유도
무제한은 아니다.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 형벌을 받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양심의 자유는 적어도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정부의 통
제가 절대로 미쳐서는 안 된다는 것 을 뜻한다(미국 연방대법원). 수형자가 저지
른 범죄의 종류는 양심의 자유 보장 여부와 상관없다. 어떤 이유로 수형자가 되
었건 간에 신념을 바꾸라는 강 요에 저항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행
위이다.
6.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향 공작과정에서 전향을 거부하다가 희생된 사람
들의 행위는 권위주의 통치에 항거하여 민주 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 고 국민
의 권리를 신장시킨 행위로서 민주화운동에 해당한다.
인권 하루 소식 2002.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