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드미트리

한효석(부천교육연대 편집국장)

러시아는 1584년 이반 4세가 죽으면서 아들 표도르가 그 뒤를 이었지요. 표도르
는 허약한 군주였는데, 흉년이 들고 농민과 노예, 도시민이 수없이 봉기하여서
나라가 아주 형편없는 지경에 빠집니다. 이때부터 약 30년간을 러시아 역사에서
는 ‘혼란의 시대’라고 합니다.

표도르는 황제가 되면서, 너댓 살밖에 되지 않은 이복 동생 드미트리를 멀리 내
쫓아 거기서 죽게 합니다. 사람을 시켜 죽였다고도 하더군요. 그런데 이 드미트
리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나타납니다. 물론 이 드미트리는 가짜였으나, 표도르
황제를 싫어하는 귀족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가짜 드미트리를 앞세워 표도르
와 싸웁니다. 그래서 이 가짜 드미트리가 표도르를 몰아내고 한때 황제 노릇을
하다가, 귀족들의 이해 관계에 얽혀 자기자신도 죽게 됩니다.

그 뒤에도 가끔 가짜 드미트리가 나타나 반란자를 모아 러시아 황실을 위협합니
다. 그 당시 농노나 농민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에 드미트리
가 나타나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드미트리가 나타났다
고 하면 그때마다 솔깃해 했지요. 마치 우리 옛 선조들이 미륵이 나타나 이 세상
을 지상낙원을 만들어 주기 바라던 심정과 비슷하지요.

그러나 그 당시 러시아 국민들이 드미트리를 기다리지 말고, 자신들 삶에서 자
기가 주체가 되었다면 “혼란의 시대’니 하는 말이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귀족
과 상인, 농민과 농노가 모두 참여하여 외부와 항쟁하면서 ‘혼란의 시대’를 끝냅
니다.

새 세기를 열어갈 대통령 선거가 우리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대통령 후보들
은 저마다 국민의 머슴이 되어 일하겠다고 합니다. 그 중에는 쭉정이도 있고, 알
곡도 있겠지요. 어쩌면 다 쭉정이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도 후보들은 모두 자기
가 진짜 드미트리라고 주장합니다. 지난 날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들이 진짜 드미
트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진짜보다 훨씬 더 진짜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진짜인지를 알아내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욱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드미트리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 앞으
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우리 자신이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진짜 드미트리라는 것을 알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