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미국과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미국과 변하는 중국
지난 번 월드컵 축구 대회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친구 생일집에 놀러가던 두
여중생이 미군 탱크에 깔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그 탱크병들이 주한 미
군 군사 법정에서 무죄로 평결되었습니다. 이에 한국 사람들이 격렬히 항의하
자, 마지못해 부시 대통령이 주한 미 대사를 통해 사과하더니, 그날로 두 미군
병사가 한국을 떠났습니다. 지금 같은 미국 태도를 보면 미국이 어디까지 갈 것
인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미국인을 구별해야 할지, 같이 보아야 할지 헷갈리기도 하지
요. 우리 나라를 방문하는 미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면 선진국 국민답게
정직합니다. 그러나 그런 정직함에 사려가 따르지 않을 때 오노가 김동성한테
금메달을 빼앗는 것처럼 아주 편파적이고 단순하고 우직하게 드러납니다. 그리
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지요.
지금은 그런 막무가내 애국심이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를 공격할 수 있는 힘
을 몰아주고 있지요. 한때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며 인권 의식이 높다던 미국이
었는데, 지금은 의심스러운 아랍계 사람들을 영장없이 체포하거나 도청해도 좋
다고 미국인들이 대부분 동의한다는 겁니다. 지금 미국은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테러로 죽은 미국 사람들 목숨이 소중하듯,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목숨
도 소중하고 그 사람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요. 그런데도 지독히 가난하
여 대항할 능력도 없는 나라에 마치 전자 오락을 하듯 폭탄을 마구 쏟아 붓습니
다. 2차대전 때 나치 독일군 한 명이 레지스탕스에게 살해되면, 그 열 배 백 배
로 점령국 시민을 세워놓고 공개 총살하던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 미국은 자기
들이 하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고, 다른 나라가 하는 것은 불륜이라고 여기며 오
만하게 일을 벌입니다.
언젠가 아이들 영화로 미국에서 ‘아이가 커졌어요’라는 영화를 만든 적이 있
지요. 두 살짜리 어린아이가 어쩌다 공룡만큼 커집니다. 철부지 어린아이에게
엄청난 힘이 부여된 것이지요. 아이가 팔을 휘젓거나 단순히 걷기만 해도 집이
무너집니다. 그런데도 이 어린아이는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 영
화를 보면서 이 어린아이가 오늘날 미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싶더라구요.
힘은 있으나, 철학이나 도덕이나 윤리라는 것을 모르지요.
하도 답답해 이런 오만한 독주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짚어보았습니다. 로마제국
이 몇 백 년, 몽고제국이 몇 백 년, 대영제국이…. 이렇게 세계를 휘젓던 제국
들을 생각해 보니, 앞날이 캄캄하더라구요. 미국이 국제 무대에 발을 디밀고 영
향력을 행사한 것이 이제 100년쯤 되었으니, 앞으로도 좀더 오래 가겠다 싶어
요. 전 세계 여론이 빗발치고, 동맹국조차 이라크 침공을 반대해도 오만한 미국
이 쉬 물러설 것 같지 않아요. 자기가 하는 것은 다 옳다고 생각하며 남의 말
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어느 날 미국이 제 자리를 잡는 날이 꿈처럼 다가오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 큰 나라들이 자기 모순을 깨닫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해 결
국 망했지요. 미국도 자기네 장점을 버리면서 자기 모순을 개선하지 못하면 나
라가 존재한다는 것뿐이지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남의 말에 귀를 기울
이지 않는 태도가 벌써 망하는 징조이기도 하구요. 얼마 전 테러와 아무 관련
이 없는 미국 시민이 자기 아들과 함께 자기네 미국 사람을 하나씩 조준해 무차
별 사살했던 일을 아시죠? 들리는 말로는 그 아버지와 아들이 미국 사회에 절망
하여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 했다는 겁니다.
그런 것으로 치자면 중국 공산당의 변신은 아주 놀라웠어요. 지난 11월 중순
에 있었던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국은 자기네 기본 이념이었던 공산주의
를 버렸습니다. 공산당 대표부에 무산계급인 노동자와 농민 대표 말고도 자본
가 대표를 집어넣었습니다. 국민들을 먹여 살리는데 공산주의가 최고로 좋은
줄 알았으나, 자본주의에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아주 엄
청난 사건이지요. 중국에서는 10년 안에 경제력으로 일본을 이기고, 20년 안에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도 미국과
일본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미국이 요즘 하는 행동머리로 따지면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맞상대할 만큼
빨리 컸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렇게 되면 우리 나라는 네 강대
국 사이에 끼여 있는 셈이 되지요. 아, 그렇다면 정말 이제 우리에게는 네 강대
국을 제대로 요리할 수 있는 국제 전문가가 있어야겠습니다.
두 여중생의 명복을 빕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우리 국민들이 한미행정협
정(소파)이 얼마나 불평등한 조약인지도 알고, 국제사의 큰 물줄기도 제대로 짚
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