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스럽다’와 ‘미안하다’
‘유감스럽다’와 ‘미안하다’
한효석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서운한 말을 하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따지지
요. 물론 대통령이 한 말을 두고 “저렇게 말해도 되는 거냐?”고 따질 수도 있습
니다. 이것은 말에 말하는 기준이 있고,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에게 거는 기대
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준은 사회에 따라 다르며, 세대와 나라에 따라 다릅니
다.
예를 들어 청소년들의 말투는 어른들에 비해 직설적인 편입니다. “사랑한다, 재
수없다”는 소리를 대놓고 말합니다. 꼭 말로 표현해야 되냐고 생각하던 기성세대
가 그런 청소년들에게 ‘달이 차면 기운다, 때가 되면 감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돌려 말한다면 잘 먹혀들지 않을 겁니다. 물론 어른 기준으로 보면 그런 청소년
들의 대화가 가벼워 보이기 쉽고, 은근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겠지요.
일본 사람은 우리 나라 사람에 비해 상대방에게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라
고 하더군요. 특히 약점을 들먹이는 것은 상대방에게 커다란 폐를 끼치는 것으
로 여긴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말은 말 끝을 빙빙 돌려 우리말보다 말 끝이 깁
니다. 우리 같으면 “그런 식으로 살지마.”라고 할 것을 일본에서는 “그런 식으
로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군요.”같이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은 좋게 말하면 예의를 갖추어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 나라 사람 특히 청소년
들에게는 아주 답답한 표현 방법일 것 같습니다.
그런 기준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 말투는 젊은 사람 말투에 가깝습니다. 좋고
싫다는 기준이 분명한데다가, 은근한 맛이 떨어지지요. 얼마 전까지도 우리는 대
통령이라면 뭔가 그럴 듯하게 말하되, 무게를 지녀야 한다고 여기며 살았지요.
그리고 대통령의 개인 감정이 담긴 말은 웬만해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
로 무슨 말이 공개되면 “그 분이 이런 뜻으로 말했을 거야. 그럴 분이 아니
야.”하며 모두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투덜대기도 하고, 어떤 일에 대해 자기 생
각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 전 같으면 “유감스럽다”고 표현할 것을 지
금은 “미안하다, 기분 나쁘다”같이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공무원이며, 정치인, 기업인, 국민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당황
해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우리에게 익숙한 대통령답게 말하라고 하고, 심지
어 어떤 분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도 삶과 조직에서 현대인들은 좀더 투명하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점점더 직설적인 표현이 늘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말해, 뭘 요구하는 거야, 결론
만 얘기해.” 같은 표현이 그 증거입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그런 방향으로 변해
왔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말투를 통해 사람들이 지금 비로소 실감하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