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부패
가장 부끄러운 일
박노자/경희대 교수
10여년 동안 한국과 인연을 가진 나는 기쁜 일도 많았지만, 부끄러운 일도 자
못 많았다. 일단 필자 또래의 한국인 젊은 학자들 대부분이 이른바 `시간강
사’로 심한 착취와 신분적 불평등에 시달리는데 `외국인 교수’로서 비교적 고생
을 덜한 게 부끄럽다. 학생의 등록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학생을 `돈줄’이자 `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며 저질교육을 사실상 강매하는 현 대학제도 개선을 위해
전혀 노력하지 못한 것 또한 부끄럽다.
그러나 가장 부끄러운 일은 한국의 한 명문대학에 유학해 다니던 시절인 9년
전 있었다. 그때 형편이 어려운 소련 학생인 내가 그 대학 주변에 있는 성경 읽
기 모임에 나가게 된 뒤, 마음 속에 큰 부끄러움의 덩어리가 남아있다.
첫째, 나를 처음 놀라게 한 것은 내가 과거에 속했던 소련 콤소몰(공산주의청년
동맹)을 뺨치는 철저한 출석·회원 관리였다. 결석은 거의 `죽을 죄’로 취급됐
고, 탈퇴를 `영적인 타락’으로 생각했다. 평소에 화장실에서든 쓰레기소각장에서
든 어디든지 신과의 마음 속의 대화가 가능하며, 마음이 부르는 때에 교화나 사
찰로 가도 된다고 굳게 믿었던 나는 `소속과 출석을 통한 영혼의 구원’이란 논리
에 경악했다.
둘째, 기도를 비롯한 일체의 신앙 행위를 공개적으로 남 앞에서 해야 했다는 것
도 납득이 안 됐다. 기도를 남이 안 보는 데서 하라는 예수의 말씀도 있지만, 나
에게는 남 앞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남이 보는 데서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격
이었다. 하지만 그 모임의 기도는 `우리 다 같이’식이었고, 기도의 성실성에 따
라 일종의 성적을 매기는 셈이었다. 나에게는 내 마음 속을 드러내는 기도를 남
앞에서 한다는 것은 그만큼 독신적 행위였다.
셋째, 그 모임 회원들이 개신교 신자가 아닌 모든 인간들이 꼭 지옥에 떨어질
것으로 믿는 것은 나에게 더 무서운 독신 행위였다. 유대인 부친과 혼혈 계통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유대교와 러시아정교회의 신앙을 경험하기도 하고,
한때 러시아 침례교회에 나가기도 했으며, 결국 불교 교리에 심취해 철학적으로
그 전통에 몸을 붙이는 등 화려하지도 않은 `종교 편력’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
서 얻은 게 있다면 바로 종교와 민족, 문화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들이 영적으로
평등하다는 신념이었다. 곧 믿음의 대상보다 믿음의 자세와 내면적인 진지성·성
실성이 중요하며 소속 종교와 관계없이 이 내면적인·질적인 노력으로만 절대자
를 접해 기독교식 표현으로 `영혼의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영혼의
구원이 영혼에 있지 외부적인 종교에 있지 않다는 논리다. 9년 전에도 이미 이
런 종류의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던 나는 불교인과 니체·마르크스와 같은 자유
사상가를 지옥으로 보내는 설교를 들으며 이런 목회자를 내생에서 더 이상 안 만
나겠다는 결심을 마음 속으로 굳히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그 정도 싫은 모임을 안 떠났느냐’는 물을 수 있다. 바로 여기에
서 여태까지 살아온 내 짧은 인생에서 제일 부끄러운 부분이 시작된다. 그 사람
들의 친절과 관심, 그 사람들이 베푸는 푸짐한 음식과 서울 견학, 그리고 재원
이 풍부한 그 교회가 주는 선물에 단순히 마음이 팔렸기 때문이다. 마음을 판
이 부분에 대해 가난과 어려움을 들먹이며 해명할 생각은 없다. 죄는 죄이기 때
문이다.
내가 본 바로는 많은 한국 교회들이 선민의식과 배타주의, 집단 소속 중심주의
등의 특징을 가진다. 출석과 헌금에 중점을 두고 내부 결속에 사력을 다하며 모
든 다른 종교를 악마화시키는 게 그 모임뿐이겠는가. 외국인 개종을 주요 성과
로 보는 많은 교회들이 영적이지도 정신적이지도 못한 `물질적 방편’들을 널리
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밖에 나가있는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이런 폐단
이 더욱 심각하다. 옛날에 일부 외국 선교사들이 가난한 한국인에게 쓰던 선교
방식을 한국의 일부 선교사들이 이제와서 가난한 외국인에게 쓴다는 것은 역사적
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민족에 많은 해독을 끼친 서양 압제자의 추태를 모방
한다는 것은 결코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한겨레 신문 2000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