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초등학생’
박 태 연(부천여성노동자회 회장)
눈 못뜨는 아이를 재촉해 깨우고 밥 한 술 떠먹인다. 고양이 세수를 시키고 부
랴부랴 옷을 입히고 나가면, 오늘 따라 왜 놀이방 차량은 이렇게 늦는지. 간신
히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고 회사로 출근. 오후가 지나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면 눈
치를 보며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받는다. 혹시 야근이라도 있으면 오늘
은 어디에 맡길까 이 집 저 집 전화를 걸어대야 한다.
드디어 아이가 커서 초등학교 입학! 이제 컸으니 한 숨 놓자 했더니 이게 왠
일. 급식은 한 달 뒤에나 한다고 하니(어떤 학교는 3학년 때에야) 아침에 출근
할 때 밥상을 차려놓고 나와야 한다. 혹시라도 바빠서 밥을 미리 차려놓지 못한
날은 가게에서 빵을 사 먹든지 참으라고 할 수밖에. 그리고 퇴근해 집에 가면 아
이는 완전히 거지꼴이 되어 친구집과 놀이터를 돌아다니다 들어온다. 학원을 보
내야 하나, 점심은 어떻게 하나, 도대체 오늘은 이 놈이 어디를 어떻게 헤매다
오는 건지 도무지 불안하기만 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 통념상 아직도 자녀
양육은 여성의 몫이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 진출도 자녀 양육의 문제와 떨어져 생
각할 수 없다. 아이를 낳아도 계속 자기 일을 하고 싶어서, 혹은 가정이 어려워
서 취업을 하거나 하려 하는 여성들.
가장 크게 걸리는 문제가 자녀이다. 자녀가 영유아라면 놀이방이 있고, 좀더 크
면 어린이집이 있다. 아침마다 전쟁을 치르고 저녁 때면 아이를 찾으려 회사의
눈총을 받아가며 부랴부랴 퇴근하지만, 그래도 아이를 맡길 데는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된다. 맡길 만한 곳이 없
으니 학원 두 어 군데를 보내든지 집에 혼자 내버려두든지 친구 집에 돌아가며
부탁해야 한다. 한참 크는 아이인데 간식을 챙겨주기는커녕 점심 한 번 잘 먹여
보지 못하니 저녁에 일이 늦게 끝나 귀가하면 아이는 배고프다고 징얼거린다.
3, 4학년만 되어도 제법 커서 자기 일은 자기가 할 수 있으련만 저학년이 가장
문제이다.
생각해 보면 영유아와 중학생 이상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지만 초등학
생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듯 하다. 사실 신체발달이 빨라지면서 이제는 초등
학교 시절부터 사춘기가 찾아오고 컴퓨터 게임, 연예인에 대한 관심 등 초등학생
들은 예전과 확연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왕따, 학교 폭력 등 사회문제도
빈번히 일어난다. 따라서 초등학생은 특별한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나이인데도
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영유아와 청소년(중고생) 사이에 놓인 별 문제없는 ‘과도
기 집단’으로 취급하고 있는 듯 하다.
서점에 가 보아도 초등학생의 신체, 심리발달에 대한 책은 거의 찾을 수 없고,
학원 외에는 정기적으로 오랜 시간을 맡길 곳도 없으니, 이제 초등학생이야말
로 ‘엄마가 알아서 돌보아야 하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부천에서는 얼마 전부터 초등학생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
했다. 결식아동 일변도에서 벗어나 맞벌이 가정의 자녀양육의 어려움, 나아가 초
등학생은 ‘영유아에서 청소년이 되는 과도기적 집단’이 아니라 특별한 보호와 지
도가 필요한 독자적인 집단이라는 점, 초등학생에 대한 교육과 맞벌이 가정의 자
녀양육 지원은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는 데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
라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을 보육하는 방과후교실이 차츰 늘어나고 있고 얼
마 안 있으면 초등학교에도 맞벌이 가정의 자녀를 위한 방과후교실이 시범적으
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며, 지금이 바로 90년대 탁아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처럼 초등
학생 방과후교실 운동이 일어날 때가 아닐까, 그리고 아동에 대한 교육은 사회
와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좀더 확대되어야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