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큰엄마 -정경미

제 목
(수필) 큰엄마 -정경미
작성일
2000-05-8
작성자

정 경 미(주부, 부천시 반달마을 삼익아파트)

생전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큰엄마 옷을 샀다. 짙은 재색 바탕에 옅은 회색과 금
색 난꽃 모양 무늬가 있는 옷이다. 반소매 옷과 긴 팔 옷이 세트로 된 앙상블이
라는 옷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옷장 앞 문고리에 그 옷을 진열하듯 걸어놓고 몇
날 며칠을 보았다. 큰엄마가 조카딸에게 처음 받는 선물을 얼마나 반겨 하실까
생각하면서.

큰엄마는 작년 12월에 환갑을 지내셨다. 큰엄마는 엄마와 같은 연배로 엄마보
다 한 살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고모와 삼촌들이 사는 큰댁
엔 말썽을 피울 아이들이 없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큰엄마는 자식이 없
었다.

그러나 우리집은 세 살 터울의 육 남매가 줄줄이 있어서 늘 정돈되지 않았다.
어린 동생들과 아버지가 함께 밥을 먹고난 뒤 밥상은 항상 지저분했다. 큰엄마
는 그런 우리집을 많이 흉보았다. 동서들간의 경쟁 심리도 있었을 것이고, 아이
없는 여자로서의 질투심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편 생각해 보면 우리만큼 큰엄마와 얽히고 설킨 집도 없다. 이런저런
일로 큰댁에 가는 것도 우리집 식구들이고, 방학 때 큰댁에 놀러 가는 사람도 대
개는 우리집 식구들이었다. 물론 큰 댁에 놀러 가는 일은 내게 아주 즐겁고 특별
한 일이었다.

큰댁 동네 아이들은 “서울 애덜” 왔다며 우리를 환영해주었고, 그 애들과 함께
큰댁 앞마당에서 한바탕 뛰어 노는 것이 좋았다. 그럴 때면 큰엄마에게 시끄럽다
고 혼이 나 마당밖으로 쫓겨나곤 했다.

중학생 때인가, 어떤 여름 방학 땐 동네 어귀의 밭에서 동생과 구슬땀을 흘리
며 하루 종일 풀을 뽑기도 했다. “너희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이 밭에
풀 다 뽑아라.”라고 큰 엄마가 명령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큰엄마는 당신 자식이 없었을 뿐이지, 어려운 집안의 맏며느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셨다. 위암으로 몇 년 동안 고생하시던 할아버지, 20년이 넘게 화장
실을 못 다니고 앉아서만 사시던 할머니의 병 수발을 혼자 다 치렀다. 8남매인
집안 형제들의 결혼을 도맡아서 모두 치르셨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김장이며 아버지 생신, 엄마 제사 때마다 항상 우
리를 도와주시던 든든한 후원자였다. 말수가 적은 큰아버지는 남의 집 식구 같았
고 큰엄마가 오히려 우리집 피붙이 같았다.

내가 남편과 힘들게 결혼할 때도 울고 불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려 주셨던 분도
큰엄마였다. 지금도 만나면 “이 년, 저 년”하며 욕을 해대기도 하지만, 그런 말
들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지금 큰엄마마저 안 계신다면 우리들에게 엄마처
럼 살갑게 ‘이 년’하고 욕해 줄 사람도 없다. 큰댁엔 아직도 두 분만 살고 있
다. 이제는 큰엄마도 옛날과 달리 많이 늙으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