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놀이터 지킴이회 -정경미

제 목
(수필) 놀이터 지킴이회 -정경미
작성일
2000-07-26
작성자

정경미(주부, 부천시 원미구 상1동 반달마을)

우리 동네 놀이터는 외형상 타 동네 놀이터와 다를 것이 없다. 그네와 철봉, 구
름다리, 둥그런 정글짐, 미끄럼틀 등등 평범한 놀이터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동
네 놀이터는 어린이들만의 놀이터가 아니다. 나무의자가 4개 사각으로 마주보며
놓여있고, 몇 년 동안 자란 등나무가 촘촘히 사각지붕을 메우고 있어서 가는 비
정도는 피할 수 있는 그 자리는 마치 놀이터 어린이들 본부석 같다.

그 자리에 엄마들은 어린아이들이 걱정스러워 나와 지켜보며 앉아있다. 성격
이 원만하지 못하고 잘 싸우는 아이의 엄마는 그게 늘 걱정이고 순한 아이의 엄
마는 또 늘 맞고 울어서 걱정이고…

한 번은 놀이터에서 뛰어 놀고 있는 아이들을 세어본 적이 있었는데, 서너 살
어린아이부터 초등학교 어린이들까지 30여 명. 엄마들도 열 명이 넘게 나와 앉
아 있던 적도 있다. 놀이터 지킴이회란 친목회를 만들어 봄 직도 하다. 다른 동
네 놀이터엔 아이들도 많이 나와 놀지 않을뿐더러 엄마들이 거의 하루종일 나와
앉아 아이들 곁에서 지켜 보는 일도 별로 없다고 한다.

엄마들이 나올 때 물은 필수이고 커피나 고구마, 포도, 떡 등 먹을 것을 가지
고 나와 놀이터에 나온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는다. 고구마와 커피를 먹은 엄마
는 또 집에 있는 빵이나 과자를 가지고 나온다. 로데오 거리 쪽으로 볼일이 있
어 나갔다 오는 엄마는 떢볶이나 순대를 사오기도 하고, 상가쪽으로 갔다 올 때
는 야쿠르트와 과자를 사다 동네 아이들을 나눠 주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앉은 자
리에서 여러 가지 간식을 먹게 되는 날도 있다. 밖에서 조금씩 나눠 먹는 음식
맛은 참으로 달콤하다 입으로만 느껴지는 맛이 아닌 이웃과의 정 때문인 듯하
다.

이 엄마들 중에는 환갑 전후의 할머니도 한 분 계신다. 그 할머니는 연세답지
않게 젊고 생각이 트이신 분이다. 그래서 할머니라고 부르기보다는 언니라고 부
르고 싶을 때가 많다. 몇 년 전 같으면 철없이 “언니, 언니” 하며 까불어 댔
을 터이지만 살아오면서 있었던 일들이 돌이켜 볼 때 ‘친할수록 예의를 지켜
라’는 말이 절실함을 실감해본 터라 말조심하려고 더 깎듯이 예의를 지키고 있
다.

놀이터에 있으면 놀다가 다투는 아이들을 타이르기도 하고 이런 저런 남의 얘기
를 듣게 되고 재미있는 일도 많다. 한 번은 큰 목소리 때문에 일어난 일들을 얘
기하게 됐다. 예원이 엄마가 자기 목소리가 커서 민망스러웠던 이야기를 하자 봉
구 할머니는 ‘나도 목소리가 크다’ 고 하면서 “목소리 작은 사람은 내숭 떨
어” 하고 얘기하였다.

그러자 예원이 엄마는 대뜸 웃으며 듣고 있는 나를 쳐다보며 “언니! 내숭 떨
어?” 하고 불러댔다. 나도 수다스럽게 잘 떠들고 말이 많은 편인데 내 목소리
가 작다고 생각됐었나 보다. 그래서 난 “내숭만 떠니 호박씨도 깐다” 하고 대
답해 주었다. 모두들 깔깔 웃어대는 사이에 놀이터의 하루가 또 저물어 가고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