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민성이와 현성이 – 김은미

제 목
(수필) 민성이와 현성이 – 김은미
작성일
2000-08-30
작성자

김은미(주부, 부천시 상1동 한아름마을)

우리집 두 애는 연년생이다. 나이가 한 살 차이일 뿐인데, 성격이나 외모나 하
는 짓은 판이하게 다르다. 열 살짜리 형인 민성이는 고집이 세고 지기 싫어하며
자기 주장 또한 아주 강하다. 반면에 아홉 살짜리 현성이는 여리고 섬세하며 눈
물이 많고 항상 양보만 한다. 그런 까닭에 현성이는 매일 형한테 치이고 울기 일
쑤라, 애 아빠나 외할머니는 현성이를 자주 감싸고 돈다.

나는 큰 애를 좋아했다. 주관이 확실하고 뚜렷하며 공부도 잘한다. 그런 엄마
맘을 눈치챈 작은애는 때때로 “형은 아빠 닮아서 엄마가 좋아하고, 나는 엄마 닮
아서 아빠가 좋아하는 거 맞지.”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왠지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제가 텔레비전에서 하버드대학교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큰애 눈이 갑자기 초
롱초롱해졌다. “엄마 나 바꿀래, 서울대학교 안 가고 하바드대 갈 꺼야.” 그리
곤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바드에 대한 자료 수집 차원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작은애는 늘상 아빠가 기준이다. “아빠 다닌 대학에 가고, 아빠 다니는
회사에 다닐 꺼야.” 소박한 그 아이의 꿈에 뭐라 딱히 할 말이 없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아침이 되면 큰애는 우산을 챙겨 놓기에 바쁘고, 작은애
는 어느 틈엔가 베란다로 나가 코를 킁킁댄다. “엄마, 비오는 날엔 흙 냄새가
나. 나는 이 냄새가 참 좋아.” 바쁜데 뭘 하느냐고 핀잔을 주다가도 아이의 순수
한 마음에 마음이 따뜻해 온다.

언젠가 선생님이 주셨다며 작은애가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들어
왔다. “엄마, 오늘 받아쓰기 시험을 봤는데, 선생님이 왜 이렇게 빵점이 많아 이
놈들… 그랬어” “그래, 넌 몇 점이니.” “난, 사십 점. 잘했지. 엄마” 작은애는
매사 낙천적이고, 걱정이나 근심, 바쁘거나 조급한 게 없다.

똑같은 프로를 보더라도 두 아이의 반응은 참 많이 다르다. 한참 즐겨보던 특
집 드라마 허준을 보며 큰애는 동의보감에 관심을 갖고 그때의 세자가 훗날의 광
해군이 된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애는 허준 아저씨가 참
불쌍하다고 가슴아파한다.

태교 탓일런가, 어떻게 두 아이의 성격이 이렇게 판이할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하
다. 그래도 서로 다른 두 성격이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 사이좋게 친구처럼 지내
게 만든다. 큰애는 당당한 아들로써 든든함을 주고, 작은애는 딸 없는 부모의 심
정을 헤아리듯 여자 아이 같은 재롱과 응석으로 집안을 화기애애하게 만든다.

두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만의 새로운 세계가 느껴진다. 레고를 가지고 로
봇을 만들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볼 때도 큰애는 강하고 튼튼한, 그래서 로봇
중에 왕이 될 그 로봇 만들기에만 열중한다. 그러나 작은애는 로봇을 대충 만들
어 놓고 로봇이 살 집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정원엔 꽃도 만들고 연못에 물고기
까지…… 눈을 반짝거리며 열심히 만드는 아이의 옆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예전엔 나 스스로 편견이 있었다. 그저 똑부러지는 큰애 성격이 더 호감이 갔
다. 지기 싫어하는 마음 덕분에 공부도 월등히 잘하는 큰애가 대견스러웠다. 하
지만 이젠 작은애는 그 애 나름대로 개성과 성격이 있다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
며 사랑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아이의 느낌이나 표현은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하
다는 것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