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

제 목
청소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
작성일
2002-04-13
작성자

육이은의 인권이야기

고교시절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고민 중 하나는 기성세대와 내가 ‘청
소년 보호’라는 취지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한다는 점이었다. 학
교 선생님들 과도 그랬고, 토론회에서 만난 많은 어른들이 그랬다. 그때는
왜 ‘청소년 인권’이라는 동 일한 사안을 놓고 이렇게 대립을 하게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청소년 인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던 것 같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사회의 일반적인 시각은 보호의 대상, 규제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 다. 대표적인 경우로 청소년 보호법을 들 수 있다. 청소년 보호법은 보호
라는 이름 아래 청소년의 여러 가지 기본적인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 근거
는 청소년은 아직 미성숙 하므로 기성세대가 정한 특정 틀 안에 있어야 하며 이
를 위해 기본적인 인권은 유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것들이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하고 있는가? 청소년 보호법은
청소년 의 권리를 제한하며 그 근거 중 하나로 ‘미성숙’을 든다. 그러나 청소년
은 늦어도 약 15 세 가량이 되면 성인과 동등한 판단력을 획득하며, 그 이후의
차이는 권리 행사 경험의 차이에 기인한다(최윤진, 1999). 즉 청소년 보호법의
논리는 ‘청소년은 권리 행사 경험이 부족하므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의
논리인 것이다. 오히려 청소년을 보호하자고 만들어진 법이 청소년의 권리 행사
경험을 가로막음으로써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 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
다. 그리고 설사 청소년이 미성숙하다 하더라도, 인권은 보편 적인 것으로 판단
능력의 유무에 따라 갖는 것이 결코 아니며, 보호를 빌미로 일방적인 성인의 잣
대만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권위적 간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청소년 보호라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정책들이 청소년의 인권을 더 심각하
게 침 해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에 기인한다. 하지만 비
단 청소년뿐 아 니라 모든 인간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청소년도 그 중 하나
일 뿐이다. 설사 청소년 이 성인에 비해 판단능력이 뒤떨어진다 하더라도 인권
은 그런 능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갖는 권리다. 청소년이 사회적으로 약자의 입장
임을 감안한다면 보호의 권리가 더욱 확 장되어야 하지, 보호의 객체로서 권리
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산적해 있는 청소년 문제, 교육문제는 이러한 관점의 전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
다. 그 동안 우리의 청소년 정책, 교육 정책은 막상 그 주체인 청소년을 제외시
킨 채 기성세대 의 일방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해 왔다. 청소년은 마치 언
제 어디서든 범죄를 일으 킬지 모른다는 ‘예비 범죄자’식의 전제 아래 청소년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고, 자기 삶 의 주체, 인권의 주체라는 인식 하에 청소년
을 바라보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청소년은 언제나 주변인으로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육이은 씨는 전국중고등학생연합 전 대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