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이야기

제 목
냄새나는 이야기
작성일
2002-05-1
작성자

냄새나는 이야기

정명영(초등학교 교사, mother87@hitel.net)

3월 말부터 앓아오던 감기탓으로 통 냄새를 맡지 못했었다. 요즘 감기가 걷히
면서 이것저것 냄새를 맡을 수 있게되니 ‘냄새맡는’ 신기함에 빠져 재미삼아 킁
킁거리며 살고 있는데…… 오늘은 그 냄새 정도가 차원이 달랐다.

교무실에 공무를 보러 내려갔다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이구, 이게 무슨 냄새냐? 킁킁.”
“몰라요 선생님, 누가 우유을 며칠 썩힌 거 같아요.”

마침 체육교과 선생님과 체육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이 있는 교실이라 후꾼
한 공기와 함께 그 메주냄새 같기도 하고 은행알 냄새 같기도 한 그 냄새는 도저
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아이들과 난 코를 킁킁거리다 지쳐서 수업
을 포기하고 냄새의 진원지를 찾기로 했다. 20년이 넘도록 선생질(?)을 했으면
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몰랐다. 가방을 열어 물건을 서로 검사하고,
책상서랍을 온통 뒤집어서 썩은 우유를 찾느라 혈안이 되었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히히, 선생님,경찰 같아요! ”
“뭬야!”

찾다 지쳐서 포기하고 수업을 하려는데 교탁 대용으로 쓰는 오르간 바로 밑
에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다시한 번 무섭게 올라오는 것이었다. 오르간을 밀고
밑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앞에 앉은 녀석의 책상 밑이라는 직감이 왔다. 쪼그리
고 앉아 그쪽으로 얼굴을 돌리는 순간, 녀석은 벌레씹은 표정으로 엉덩이를 의
자 저쪽으로 비키는 것이 아닌가. 아뿔싸! 그랬구나!!

냄새는 바로 그 녀석의 엉덩이쪽에서 푸실푸실 독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잠
시 밖으로 불러내서 보니, 엉덩이에 누런 얼룩이 배어나와 있었다. 아이들과 내
가 냄새의 진원지를 찾는 동안 얼마나 겁이나고 창피했을까. 녀석은 괜시리 잠바
를 이리저리 뒤집어 쓰며 몸을 비비 꼬고 있었는데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
다.

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배가 아팠냐. 설사를 했냐. 누나가 몇 반이
냐 묻는 동안에도 미안하고 미안해서 정신이 없었다. 고학년만 연속으로 하다보
니 3학년 녀석이 실수(!)를 했으리란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었다. 단지 썩은 우유
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이다.

누나를 불러 집으로 보내놓고, 아이들한테는 오르간 밑에 썩은 우유가 있었다
고 둘러댔다. 3학년 아이들은 선생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오르간 밑에 우유
가 썩어 있었대~.”라고 떠들더니 더 이상 캐묻지도 않았다. 착하기도 해라. ^^

어쨌든 선생질을 아무리 오래 해도 애들한테 저지르는 실수는 한도 끝도 없
이 되풀이 되는구나 싶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