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신문사 ‘야합’에 멍드는 동심 -임경환

제 목
학교와 신문사 ‘야합’에 멍드는 동심 -임경환
작성일
2002-05-1
작성자

이름 : 임경환 ( ) 날짜 : 2002-05-01 오전 11:49:51 조회 : 169

학교와 신문사 ‘야합’에 멍드는 동심
[교육현장실태] 기부금 욕심에 소년신문 집단구독 ‘강요’

임경환 기자 samter97@hanmail.net

“애들 거의 만화만 봐요.”(김금유 양)
“재미있는 기사도 있는데 광고가 너무 많아요.”(송혜인 양)
“책 선전이 너무 많이 나와요.”(오윤성 양)
“만화보고 한자쓰면 끝이예요”(박현석 군)

서울 국공립 초등학교 99% <소년조선><소년동아><소년한국> 구독

서울가락초등학교 5학년 3반 교실에 모인 아이들이 매일 배달되는 어린이신문에 대한 평가다. 24일 오전 8시 30분이 되자 딸배(신문배달하는 아이)가 교탁 위에 신문 뭉치를 던져놓고 간다. 신문배달은 5학년 4반 학생들이 전담하고 있다.

신문이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우루루 교탁 앞으로 몰려가 자기 신문을 가져간다. 십여 명의 아이들이 가지고 간 신문은 모두 소년조선일보.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는 관리 편의를 위해서 같은 학년 학생들은 똑같은 신문을 구독한다.

신문을 가지고 간 뒤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신문을 계속 들여다보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김진숙 양은 “동화책보는 게 더 재미있다”면서 신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책상 위에는 펴보지도 않은 신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자기 신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옆 친구와 같이 신문을 보는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다.

5학년 3반 학생 34명 중 1-2명을 제외하고 모든 어른이들이 어린이 신문을 구독한다. 박현석 군은 “다른 아이들이 다 받아보니까 덩달아 받아본다”고 얘기했다.

가락초등학교 5학년 3반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생들의 집단구독현상은 비단 이 학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지난 2001년 10월 24일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보고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국공립 초등학교의 99%인 501개의 학교가 <소년조선일보><소년동아일보><소년한국일보> 등 특정신문을 집단으로 구독하고 있다.

기자는 한 선생님에게 “한 반에 한 부씩만 받아서 게시판에 걸어놓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건넸다. 이에 그는 “그 방법도 괜찮은 방법이고 도서관에 신문별로 진열해 놓은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가 있겠지요”라면서도 “하지만 아이들에게 신문구독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고백했다.

신문 구독 대가, 기부금은 화장실 청소 용역비로

“우리 학교의 경우 학교 예산 자체가 적어서 서울어린이후원회(세 어린이 신문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단체)가 학교에 기부하고 있는 돈으로 화장실 청소 용역비를 대고 있습니다. 어린이 신문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이들이 화장실 청소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어린이 신문 구독 거부를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서울시 국공립 초등학교는 신문 구독의 대가로 서울어린이후원회로부터 한 달 평균 90만원 정도의 기부금을 받고 있다. 서울어린이후원회에서 서울시 국공립 초등학교에 지출하는 기부금의 액수는 월 4억8천만원이 넘는다. 서울어린이후원회에서 서울시 국공립 초등학교에 구독료의 20%를 기부금으로 내는 것으로 볼 때, 한 달에 신문구독료로 서울시 국공립 초등학교 학부모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24억 원에 이른다. 결국 세 어린이 신문사는 학생들에게 반강제적인 집단신문구독으로 인해 24억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그 대가로 학교에게 4억8천만원의 기부금을 내는 셈이다.

그는 “신문사의 영업이익과 학교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다”면서 “특히 세 어린이 신문사는 암묵적으로 금전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어 초등학교 신문시장을 세 부분으로 나눠 먹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는 세 신문사가 학년별로 골고루 신문을 분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교육청 기획예산실 학교회계담당자 한기웅 씨는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집단 구매로 발생한 수익금을 자발적으로 학교에 기부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과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반대급부가 있는 금품의 경우 금품 접수를 금지해야 한다’는 ‘학교발전기금조성 운영 및 회계관리 규칙’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는 합동법률사무소’ 권두섭 변호사도 “소년OO일보를 구독 안했을 경우에도 서울어린이 후원회에서 학교측에 돈을 주는 거냐”고 반문하면서 “이것이 대가성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가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실제로 소년OO일보 측은 신문을 각 학생의 집에 배달해줄 필요가 없이 학교에 갖다놓으면 ‘딸배’들이 알아서 교실에 배달해주고 대급수납도 스쿨뱅킹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엄청난 비용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다. 학교가 지국역할을 대신하고 교사나 학생이 배달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 지면 50%가 광고인 신문에서 무얼 배울까?”

전교조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기부금의 위법성 외에도 신문의 내용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어린이 신문 구독으로 인한 학습효과에 대한 평가도 회의적이다.

구로시민센터 시민교육위원회 학부모모임은 3월 18일부터 2주 동안 소년OO일보를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한 결과 “전체 지면의 50% 이상이 광고로 채워지고 있고, 새로운 내용이 아닌 지난 기사가 실리고 있으며, 취재 기자가 적어 연합기사 비중이 높고, 학습면이 고학년을 대상으로 했을 때 저학년은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소년조선일보 이종식 편집장은 “요즘 광고가 없어서 지면의 30%도 못 채우고 있는 상황인데 전체 지면의 50% 이상이 광고로 채워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소년조선일보 4월 24일자를 살펴본 결과 전체 지면의 50% 정도가 광고로 채워지고 있었고, 소년 조선일보 기자가 쓴 기사는 5꼭지밖에 없었다.

어린이 신문의 기사 논조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일부 교사는 소년OO일보가 사회비판적인 내용보다 학교장의 치적을 드러내는 기사나 다른 회사 상품을 홍보하는 기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도균(34)씨는 “신문기사에 비판의식은 없고 교장의 치적을 드러내는 기사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기사가 주요 기사로 다루어지고 있다”면서 “또 소년 조선에 특집으로 다루어졌던 운보 김기창 기획 기사에서는 수구적 논리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수하려고 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소년 조선일보에서는 23일자 4면에 ‘인기 애니메이션 큐빅스 게임으로 즐긴다’는 제목의 기사를 써 놓고 그 다음날 신문 6면에 큐빅스 광고를 싣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어린이신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교사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영서초등학교 학부모 장경숙 씨는 “‘학습자료로 이용하려고 하니 구독해 달라’는 담임 선생님의 부탁 때문에 3월 한 달간 구독을 했는데, 딸아이가 봐서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없는 것 같아서 구독을 중지했다”면서 “가끔씩 어린이 신문을 보다보면 이 기사내용이 아이들에게 적합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홍상희 씨는 “학교에서 구독하는 어린이 신문에 나오는 기사내용이 믿을 만하지 못하고 신문에 나오는 만화에는 아이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이 있다”면서 “집에서 ‘굴렁쇠’라는 어린이 신문을 따로 구독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어 “공식적으로 구독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미묘한 분위기가 학부모들 사이에 존재한다”며 “자율학습 시간에 학습자료로 사용한다는 데 구독을 신청하지 않을 부모는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전교조 등 5월부터 어린이신문 구독거부 운동 벌일 예정

어린이 신문에 대한 교사와 학생들의 불만이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23일 오전 10시 전교조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초등학교에서 소년(동아/조선/한국)일보 단체구독 근절 촉구 및 구독 거부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구독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거부할 것을 결의했다.

특히 23일 각 학교 전교조 조합원들의 대표인 810명의 학교 분회장들이 소년OO일보 거부 선언을 하기로 했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학부모선언문을 통해서 “소년OO일보를 아침 자율학습 교재로 활용하지 말 것과 소년OO일보의 대가성 기부금 조성을 근절시킬 것”을 학교와 교육부에 요구했다.

구로시민센터 시민교육위원장인 백해영 씨는 “굳이 신문에 나오는 한자나 문제들을 학습자료로 삼고 싶다면 담임 선생님이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며 대안을 제시했다.

전교조와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는 경과보고를 통해 “오는 5월부터 신문구독업무 거부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오마이뉴스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