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의 돈벌 자유 vs 외면당하는 청소년 인권
학원의 돈벌 자유 vs 외면당하는 청소년 인권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기사전송 기사프린트 김영원 기자
0 교시 수업, 그리고 정규 수업 이후 야간 자율(반강제)학습. 이 모든 학교 수업
을 마치고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밤늦게 학원으로 향해야 하는 청소년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청소년들의 고단한 삶에 두 눈을 감
고 입을 닫아버렸다. 국가인권위가 학원 교습시간 제한규정을 삭제하는 것은 청
소년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진정사건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은 채
각하해 버린 것.
지난해 6월 국무조정실의 규제개혁위원회(아래 규개위)는 “충북, 서울 등 5개 교
육청에 학원 교습시간을 규제하는 조례 규정은 상위법령에 근거가 없다”며 이 규
정을 삭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따라 충청북도 교육감은 학원의 교습시간을 오전 5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제
한하는 규정(‘충청북도학원의설립·운영및과외교습에관한조례’ 제4조 제1항)을
삭제한다는 조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교사인 유모씨가
충청북도의 이 같은 조례 개정이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진정을 인권위에
내면서 인권위의 결정에 눈과 귀가 몰렸다.
학원 시간 규제 해제는 돈벌이 위한 것
밤 늦게까지 행해지는 학원교습을 제한하지 않을 경우 입시위주의 잘못된 교육
열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돌아올 인권침해는 명약관화한 일.청소년 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학원 교습시간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것은 여가 시간뿐 아니라 수면
시간까지 대폭 줄어들게 해 청소년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며, 늦은 시간에 유해
환경이나 범죄에 노출되어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인권위에 개진했
다.
또한 부모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밤늦은 시간에 학원으로 내몰 가능성이
있고, 학원 운영자가 교육열을 악용해 이익을 챙기겠다는 속셈이 들어있는 상황
에서 학원교습시간 제한규정의 삭제는 성인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라고 지적했다.
밤늦게 학원다니는게 선택?
그러나 지난 13일 전원위원회에 참석한 인권위원들은 청소년 인권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만을 열거했다.
김오섭 비상임 위원은 “공부할 기회 자체가 인권침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
다”며 밤늦게 학원을 다니는 것은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 “(학원시간
을 규제하려면) 교육방송도 밤 12시 이후에는 방영되지 말아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유현 상임 위원도 “일률적으로 몇 시 이후에 학원교습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근로청소년의 경우 그 시간 이후 교육이 가능
해야 하지 않은가?”라며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인권위원들은 이런 견해도 피력했다. 조미경 비상임 위원은 “규개위가 조례 삭제
를 권고한 마당에 같은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조례를 유지하라고 권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
해야할 인권위 본연의 권한과 책임을 스스로 포기했다.
결국 인권위는 “상위법이 없는 상황에서 조례 개정은 입법사항으로 인권위 사안
이 아니다”라며 진정을 각하했다.
<인권하루소식> 2003년 10월 17일자 (제24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