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비껴 서서

제 목
한 걸음 비껴 서서
작성일
2003-09-7
작성자

20년도 더 된 일입니다. 제가 군에 갓 입대하여 훈련할 때였지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훈련병들이 단체로 목욕을 합니다. 그 시간이면 하루종일 흘
?린 땀을 씻어낼 수 있어 즐거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욕할
?시간을 한 사람에게 3분만 주기 때문이었지요. 군인이라면 무슨 상황이 닥쳐도
?얼른 해결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니 훈련병이 일과가 끝나고 목욕하
?는 것은 피로를 푸는 일이 아니라 훈련의 한 과정일 뿐이었지요.
?
? 교관이 훈련병들을 탈의실에 줄맞추어 세웁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지요. “목
?욕 시간은 3분이다. 첫 소대 출발.” 이 말에 맞추어 수십 명이 얼른 옷을 벗어
?던지고 목욕탕으로 뛰어듭니다. 이 닦는 사람, 머리 감는 사람, 온 몸에 비누칠
?하는 사람.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지요. 그리고 그 주어진 3분이 되면 목욕탕
?에 있는 조교들이 호루라기를 불고 소리를 질러, 발가벗은 훈련병들을 탈의실 쪽
?으로 내쫓습니다.
?
? 머리에 비누칠한 채 내쫓기기도 하고, 입안에 치약 거품을 문 채 나오기도 합니
?다. 젊은 청년들이 발가벗고 이리저리 쫓겨다니는 목욕탕을 상상해 보세요. 싱싱
?한 건강이 넘쳐나는 것이 아니라 살벌한 경쟁만 있을 뿐이지요.
?
? 다음 소대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군복 윗저고리 단추 몇 개를 몰래 풀어놓습
?니다. 단추 푸는 몇 초라도 아끼려는 속셈이지요. 교관이 “다음 소대 출발.”하
?고 소리 지르면 똑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그래도 그런 난장판 속에서 어떤 사
?람은 욕탕에 뛰어들어 온 몸에 물을 묻히고 비누칠하여 재빨리 머리감고 샤워하
?고 이까지 닦고 나옵니다.
?
? 저도 시간에 맞추어보려고 여러 모로 궁리했습니다. 단추를 미리 끌러도 보고,
?이쪽 발로 저쪽 발 양말을 슬그머니 밀어내려 놓기도 했지요. 그러나 무슨 수를
?써도 몸을 씻기는커녕 머리 하나 감고 나오기가 어려웠습니다. 머리에 묻은 비
?누 거품을 씻어내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조교한테 엉덩이를 채여 엉거주춤 밖으
?로 쫓겨날 때면 ‘내 처지가 이게 뭔가’ 싶어서 아주 정말 비참했지요.
?
? 그래서 꾀를 낸 것이 “아예 목욕을 하지 말자.”였습니다. 교관이 소리를 지르
?면 옷을 벗기 시작하되 목욕탕에 제일 늦게 들어가 목욕하는 척합니다. 그리고 3
?분이 지나 호루라기를 불면 쫓겨나는 척하며 탈의실로 돌아와 옷을 입지요. 나
?는 단지 옷을 벗고 입을 뿐이니 주어진 3분이 넉넉했고, 목욕하다가 발가벗고 쫓
?겨나지 않아도 되었지요. 몸을 씻는 거야 숙소에 돌아와 아무 때고 10분쯤 짬을
?내면 숙소에 있는 세면장에서도 얼마든지 씻을 수 있는 거니까요. 그때 많이 깨
?달았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남들이 하는 것을 다 따라 하기는 힘들다. 남들이
?할 때 나는 하지 않거나, 남들이 하지 않을 때 시도하면 삶이 얼마든지 여유로
?울 수 있다.
?
?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남들이 똑같이 몰려다닐 때 한 걸
?음 옆으로 비껴 서보세요. 정말 다른 세상이 보일 겁니다. 예를 들어 남들이 모
?두다 자기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고 할 때, 우리 아이는 대학에 안 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 다른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여 가정에 안주하려
?할 때, 우리 아이가 한 곳에 머무르지 않도록 부모가 자극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
?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