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희망원을 냈어요….
학교를 그만 둔다고 하니까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렇지만 갑자기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오래 고민한 것입니다.
지난 해 10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아버지는 우리집에 오셔서 저하고 꼭 3년을 살았어요. 단 하루도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었어요. 처음부터 제가 모시려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시게 되었어요. 지나 놓고 생각해보니까 아버지가 제 소원을 들어주신 것 같
습니다.
그때 저는 참 좋았어요.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시고, 일제 시대에 청년기를 보내
셨기 때문에 서민사를 대변해 주실 수 있는 분이었죠. 쉽게 이야기하면 이야기거
리가 많은 분이었습니다. 가끔 하시는 말씀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때마다 ‘그래, 이런 것을 녹음해 두자’ 싶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바쁘게 살았어요.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았어요. 그렇게 사는 것이
정상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낼 녹음하지, 모레 녹음하지’ 하다가 3년 동안 단
한 번도 녹음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헤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가, 이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면서도 늘 미루고 삽니
다. 아이들하고 놀아준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킬 새도 없이 놀아줄 시기가
이미 지나가 버린 것과 같습니다. 이러다간 ‘만나야지, 만나야지’하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죽을 지도 몰라요. 생존하기에 바빠서 생활을 잃고 있는 것입니
다.
그래서 그만 두기로 한 겁니다. 생존보다 생활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물론 쉽지
는 않겠지요. 특히 경제적으로는 여러 모로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해보는 데까
지 해보지요. 뭐…… 이제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아이
들이 더 크기 전에, 아내가 더 늙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형제와 친
척과 친구들이 더 늙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