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이 있었다. – 황석영이 동인문학상을 거부하다…-김영진
이름 : 김영진 ( seulk@hitel.net) 날짜 : 2000-07-21 오전 6:48:28 조회 : 154
# <객지>, <장길산>, <무기의 그늘>, <오래된 정원>의 작가 황석영! 나는 그 이름에 희망을 매달겠다. 그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오늘 신문에 실린 “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는 그의 글을 읽으며 나는 가슴이 설렜다는 것을 고백한다.
역사 의식의 빈곤, 현실 인식의 부재 -우리 문인들의 정신 수준을 나는 이 두 말로 진단하곤 했다. 김정란을 읽으며 희망의 싹을 보았고 오늘 황석영을 읽으며 나는 환한 아침을 맞았다. 끼리끼리 훑어먹는 문학판에서 문학만이 문학이 아님을 진정 깨닫게 해줄 작가가 많이 나와주길 나는 목마르게 기다렸다. <조선일보>라는 이름에 침을 뱉을 줄 아는 작가가 있었다아!!
동인 김동인, 그는 잘 알다시피 부일(친일) 문학인이다. 그의 문학 또한 문학상을 걸고 기릴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는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그를 기리며 문학상을 만들고 그 이름으로 문학을 욕먹이는 <조선일보>. 동인의 삶의 괘적이 <조선일보>와 많이 닮기는 했다. 황석영이 동인에게 부정적이듯 나도 그를 인정할 수 없다. 그를 인정하게 되면 올곧은 삶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태우며 산 소중한 우리 문인들이 너무도 초라해진다.
문학은 글이 아니다. 문학은 삶이다. 글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문학인들이 글만으로 먹고 살려는 편협함에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황석영에서 배워라.
<조선일보>가 정치·경제·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다는 황석영의 지적은 정확하다. <조선일보>에 놀아나는 글쟁이들의 머리가 여기까지도 접근하지 못하는 걸까. 종신 심사위원이라. 누이 좋고 배부 좋고… 놀고들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박완서, 그 이름에서 문학을 읽었던 내가 부끄럽다. 그 이름에 침을 뱉는다. 이청준은 그렇다치고… 우리의 무녀리 이문열 그가 빠질 수 없지.
<조선일보>로 세상과 혼음하는 문인들아, 황석영을 배워라!!
(군산 영광여고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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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에 그 신선한 글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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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후보작을 거부한다
황석영
나는 7월14일자 <조선일보>를 우연히 보고서야 내가 지난 5월에 13년 만에 간행한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이 동인문학상의 심사대상에 올라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 나는 책을 내고 나서 여러 신문사와 합동기자간담회를 하면서 계기가 되어 <주간조선>과 <조선일보>에 인터뷰를 하게 되었고, 그 일로 `<조선일보>의 파쇼적 논지’에 반대하는 이들로부터 내 책을 낸 창작과비평사와 함께 싸잡혀서 질문과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밝히자면 나는 시장에 내놓은 상품으로서의 책의 광고와 선전에 어느 매체가 동원되든지 알 바 없다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책의 내용과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테니까. 따라서 내 책에 쓰여진 내용에 대하여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시장에의 대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장에서 힘을 얻지 못한 문화 물건이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게 평소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군사 파시즘과의 결탁으로 성장한 <조선일보>는 침묵과 수혜의 원죄의식으로 동참하게 된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그로서 막강한 언론권력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시대에 사회의 기초 공리는 억압에 의하여 말살되거나 부인되었으며 그 반대의 가설이 산더미처럼 재생산되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 언론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위해서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당위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본주의 시장을 향하여 `전업작가’로 먹고 사는 나로서는 책을 내놓고 다른 상품들처럼 광고와 소개는 하여도 그 지면에 글은 쓰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워 두고 있었다. 요즈음에 생각이 정리된 뒤에는 어떠한 빌미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지고 말았다.
왜 또 내가 해야 되냐? 하는 푸념도 나오고 귀찮으니 옆으로 비켜서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앞장서서 편들기’는 작가의 옳은 밥 먹는 자세이기도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이른바 `안티 조선’ 측이 소극적 진영주의로 `충실한 반대당’ 식의 내부적 권력이 되어 버릴 위험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언론 개혁을 위한 구체적이고 대중적인 운동의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다시 내게 관련된 동인문학상의 심사경위로 돌아가자면, <조선일보>는 몇몇 작가 평론가들을 `종신 심사위원’으로 선정해서 `공개적’으로 심사한다고 한다. 심사위원들 면면을 살펴 보니 문단에 나온 지 38년이 되는 내게는 선배보다는 후배가 더 많았다. 심사의 대상이 된 후보자들도 수십년 차이가 나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즈음 <조선일보>는 정치·경제·사회면에서는 종전보다 더욱 반개혁적이면서도, 문화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 주려고 하는 교묘함을 보이고 있으며, 보다 이질적인 문인들에게는 단 몇 매짜리의 칼럼 한 편에 다른 신문의 무려 다섯 배 가까운 원고료를 지불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냉전적 공격과 터무니없는 폭로로써 `권력’을 누리고 이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를 유지해보려 하는 것인가?
죽을 때까지 심사를 한다면 그 위원들과 <조선일보>는 앞으로도 수십년간 불변할 것인지. 앞으로 수십년 동안 수많은 미래의 심사 대상자를 동시에 관리하려는 것인지. 전망이 안 보이는 자들은 역사는 과거에서 지금까지 불변할 것이라고 믿겠지만, 하늘 아래서 역사와 사람의 가장 큰 특성은 변화에 있다는 것을 오늘도 우리는 보고 있다.
문학상의 상업주의와 사이비 권력놀음 따위의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상은 <조선일보>가 특정 문인 몇 사람을 동원하여 한국문단에 줄 세우기 식의 힘을 `종신토록’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같은 잣대 위에 올려 놓고, 공개된 신문지상에서, 불공평하게도 의견을 내놓은 자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은 채, 내용과 별 상관도 없는 말 몇 마디로 `탈락’이니 `잔류’니 하고 치워버리는 것은 누가 누구에게 부여한 권리인가? 무슨 경품 뽑기 대회도 아니고 불량품 가려내기도 아닐진대, 편 가르기와 줄 세우기 식의 사이비 권력놀음을 당장 걷어 치워라.
심사에 동참한 동료 문인들에게도 엄중히 항의하건대, 나는 변변치는 않지만 떳떳하게 살 권리가 있는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욕을 보이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학상이 세계관의 한 표현일진대 나는 <조선일보>측의 `동인문학상’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의 동인의 위치에 대하여도 이견이 있는 사람이며, 따라서 귀측의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일단 밝혀두려고 한다.
한겨레 [특별기고] 2000년 7월 19일 황석영
편집시간 2000년07월19일19시0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