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꽃동네를 아시나요-장승백이

제 목
가평 꽃동네를 아시나요-장승백이
작성일
2000-08-24
작성자

이름 : 장승백이 ( ) 날짜 : 2000-08-24 오후 4:30:48 조회 : 138

이산가족 상봉으로 온 나라가 울음바다가 되었을 때 북으로 돌아가는 상봉단을 마주치고 인생의 질긴 인연, 피맺힌 한, 그리움, 사랑, 절규등을 떠올리며 꽃동네에는 어떤 삶의 모습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망연히 차를 달렸습니다.

가평 꽃동네는 음성 꽃동네와 같은 기관으로 운악산 현등사 입구에서 좀 떨어진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데 가난하고 병들어 오갈데 없이 버려진 노인들과 정신지체자 및 질환자, 미혼모가 낳은 아기들, 장애인등을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사랑으로 보살펴 주고, 삶의 무게는 무겁지만 마음은 평화스러운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며 사는 곳입니다.

봉사부 학생 41명, 이쁜이님, 부천시 자원봉사 센터 3분, 모두 46명이 참여를 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시에서 마련해준 도시락을 먹고 바로 각자 분산 배치되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 곳 중에 평화의 집 5층에 혼자 배치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2층에는 임종의 날만 기다리며 생의 희망이 전혀 없는 중환자들, 3층에는 거동을 제대로 못하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들, 4층에는 할아버지들이 있는데 5층은 움직일 수 있는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저는 다른 층에 배치된 학생들 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는데도 무척 힘이들었습니다.

스스로 일을 찾지 않으면 별로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할 일이 많고 바쁜 곳입니다. 봉사활동 왔다고 하니까 의례적인 것으로 생각했는지 처음에는 할머니들이 마음을 열지 않다가 일을 하는 것을 보더니 차츰 말도 걸어왔습니다. 쓸고 닦는 것은 기본,물건나르고 심부름하고, 빨래널고 걷고, 간식 먹여드리고, 식사준비하고 휠체어 태워드리고
산책시켜드리고, 정말 너무 바빴습니다. 이곳은 85명의 할머니들이 계셨는데 움직이 수 있다고는 하지만 반 이상은 수족을 잘 못 쓰고 치매 끼가 있기 때문에 참외나 사과도 긁어 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학생들은 청소하고 할아버지 할머니들 대소변 받아내고, 아무데나 배설한 것 치우고, 먹여드리고, 심부름하고, 지저분한 것도 마다 않고 밤샘까지 하면서도 밝은 표정으로 정말 진지하게 활동을 했습니다. 그곳에 갈 때까지도 학생들이 요령이나 피우고 말썽이나 일으키지나 않을지 내심 걱정도 했지만 그것은 나의 기우였습니다. 학생들이 자기의 일을 해내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찾아서 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믿음직하고 의젓해 보였습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봉사활동을 하는데, 저녁에는 심성 수련을 했습니다. 이튿날에는 촛불 의식을 하기 전에 서로 신뢰쌓기 게임을 간단히하고 이틀 동안 봉사를 하며 느낀 소감을 각자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기들 방에서 일을 한 학생은 아기들이 정말 예쁘고 불쌍해서 안아 주고 싶었는데 안아 줄 수가 없었다고(안아주면 손 타서 힘들다고 수녀님들이 못 안게 해서) 울고, 다른 학생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불쌍하다고 울기도 하고, 그동안 자기의 생활이 잘못된 점이 많았다고 반성하는 학생, 이 다음에 꼭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하는 학생, 몸 성하고 가족이 있는 것만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는 학생, 봉사를 하러 왔지만 자기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아 가는 것 같다는 학생 등, 자신을 반성하고 사랑이 넘치는 ,진솔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나약하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잘 참지 못하고 이기적이라고 하지만 이 학생들에게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저 또한 이런 학생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즐겁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연고가 없는 사람도 많지만 가족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든여덟살의 강씨 할머니는 아들 셋, 딸 하나에 아들들이 한의사, 식당업, 목수인데 며느리가 나가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해서 여기에 왔다가 손자와 자식이 보고싶어 두 달 후에 돌아가 보니 이사를 가서 다시 들어 왔다고 합니다. 틈만 나면 현관에 쪼그리고 앉아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만 피워대는 할머니에게서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병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들을 찾아 주겠다고 했지만 끝내 아들 이름을 말하지 않는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의 크고 슬픈 사랑도 느꼈습니다.

복도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제 엉덩이를 툭툭 쳤습니다. 뒤를 돌아보자 할머니가 “총각! 고생이 많어 “하면서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웃는 얼굴이 정말 천사 그 자체였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감사함과 미안함을 표시하는 할머니들의 그 마음을 우리가 일상 속에서 그대로 행한다면 질시와 탐욕과 각종 비리로 얼룩진 이 세상이 얼마나 밝아질까요.
할머니들의 세계에도 위계질서가 있어요. 밥 푸고 간식 배분하는 할머니들이 가장 막강합니다. 마치 군대에서 취사병과 식사당번이 어깨에 힘을 주듯이 말입니다. 어디를 가나 배부른 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꽃동네는 경관이 빼어난 곳인데 바로 앞에는 골프장이 있습니다.
골프장과 꽃동네. 너무나 대조적이라는 것을 저만 느꼈는지 모르지만 창 밖으로 라운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왠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장료에 포함된 문화 체육 발전 기금을 이런 곳에도 투자를 한다면 불우한 사람들이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좀 변했지만 선진국처럼 자원봉사 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준다면 앞으로의 사회는 점점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 꽃동네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시설입니다. 이렇게 한 곳에 크게 만들어 유지하거나 보수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소규모로 여러 곳에 만들어 비용도 절감하고 많은 사람들이 찿아 가기 쉽게 하면 자원봉사도 더 활성화 될 거라고 수녀님과 얘기도 나누었는데요, 그래도 이런 시설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면서 수녀님도 공감을 하더군요.

떠나오는 날, 밤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나이트를 하고도 떠나야 되기 때문에 잠을 안 자고 봉사를 하겠다고, 밥을 먹고 곧바로 봉사를 하러 가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교만한 마음은 없었는지, 귀찮다는 생각은 않했는지, 할머니들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되뇌여 보았습니다. 헤어짐의 아쉬움을 남기고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운해가 휘감아 도는 운악산과 꽃동네를 뒤로하고,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다시 오겠다고 마음 속으로 약속을 하고 떠나 왔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을 열고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