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를 아십니까?

제 목
매향리를 아십니까?
작성일
2000-06-8
작성자



6월 6일 오후 1시에 경기도 화성군 매향리에서 인간띠 잇기 행사가 있다고 해서 우리
식구들은 일찌감치 매향리로 출발하였어요. 승용차로 마을 옆을 지날 때는 11시가 거
의 다 되었는데, 여느 농촌처럼 이앙기로 모를 심어 놓은 모습이 너무나 평화로웠습니
다. 플래카드가 없었다면 이곳이 그 유명한 매향리라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매향리 옆 바닷가와 섬이 미 공군 사격장이 된 지가 5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저도 공
군 전투기 관제사로 망일산 레이다 기지에서 근무할 때, 미공군기를 이곳 매향리로 유
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곳을 쿠니 레인지(koon-ni range)라고 했어요.
오늘날에서야 쿠니가 매향리라는 것을 알았지요. 매향리는 가수 안치환 씨의 고향이라
고도 하는데, 지금은 매화 향기보다 폭약 냄새가 더 진동하고, 가축 울음소리보다 머
리 위로 스쳐 지나가는 전투기 굉음으로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마을을 가로 질러가며 전투기가 기총 사격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표적판이 설치되어 있
습니다. 사진 오른쪽 바닷가가 기총 사격장, 그 너머에 있는 섬이 폭탄 투하 연습장.
사진 한 가운데 쯤에 통제소가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살아 움직
이는 엑스트라가 되어 농사를 짓고, 뻔히 내다보이는 표적판에 총알이 박히는 것을 보
고 가슴을 쓸어 내리며 삽니다. (찾아가실 분은 기아자동차 남양만 주행시험장을 찾아
가시면 됩니다. 바로 그 옆 마을입니다.)



11시에 벌써 전투 경찰이 매향리 사격장 철조망을 둘러싸고 3000명이 배치되어 있었습
니다. 마을 주민이 800명쯤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가 부대를 에워싸고 있었던 셈이
지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생, 시민단체, 노동자 등도 3000명쯤 되었다고 하니, 아
마 마을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였던 것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래도 다행히
이날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커다란 불상사는 없었습니다. 시위 문화도 많이 성숙한
것 같더군요.



12시가 되자 매향리 부녀회에서 방송을 하였습니다. ‘부녀회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
평화적인 집회가 계획되어 있으니, 마을회관 앞으로 모여 주세요’
우리는 차를 바닷가에 세워놓고 마을로 걸어갔어요. 혹시나 못 들어가게 할까 봐서였
지요. 아침에 우리가 서해안 도로를 타고 오다가 발안 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와 조암
을 거쳐 매향리(발안-매향 16킬로미터)로 올 때, 도로 중간 중간에 경찰이 벌써 쫘악
깔려 있었거든요. 그러나 다행히 우리 식구들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마을에 들어
갔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빨간 모자를 쓴 분들은 마을 남정네들이고, 마을 부녀
자들은 밀때 모자를 쓰고 그 위에 하얀 수건을 둘렀어요. 다른 사람들도 속속 버스로
도착했습니다. 봉고 트럭에 실려 있는 스피커에서는 운동권 노래가 계속 나오고 있었
구요. 잠시 후에 도착한 어느 노조 사물놀이패가 흥을 돋구었어요.



참 장관이대요. 요 근래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을 처음 봤어요. 각종 깃발, 플래
카드, 머리띠, 파란색, 노란색, 흰색…..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서총련, 참여자치군산연대, 전국민주노총, 항공대, 감신대, 연세대, 경기대, 기아노
조화성지부, 민주당수원지부, 민주노동당안산지부, 안산건설노조, 부산동아대, 녹색연
합, 평택민주노동자회……. 눈에 띄는 깃발을 보고 몇 개 적어놓은 것들입니다. 그
야말로 전국 각계 각층에서 다 왔어요.



이윽고 사람들이 대오를 갖추어 쿠니 사격장 정문으로 가며 구호를 외쳤어요. 물론 우
리 식구들도 그 틈에 끼어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쳤지요. 국내 기자들도 많았고, 대학
생 기자도 있었고, 일본 언론사에서도 취재를 하더군요. 군중 사이에 정보과 형사도
있었을 테고, 군청 직원도 있었겠지요. 모두들 수첩에 뭘 적느라고 바쁘대요…. 아
래 사진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아이가 누리이고, 그 옆 빨간 옷 입은 사람이 누리 엄
마입니다.
나중에 인간띠에 참여한 분들이 미군 철조망을 일부 걷어내고, 시멘트 기둥 몇 개를
쓰러뜨렸어요… 정말 통쾌하대요. 왜 내 땅에 손님이 들어앉아 주인 행세를 하는 겁
니까? 생각 같아서는 다 뽑아 버리고 싶었지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우리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 왔는데, 텔레비전 방송사에서는 9
시 뉴스 말미에 15초에서 20초 보도하는 것으로 그쳤어요. 실망스럽지요. 다음날 조선
일보는 손톱만한 크기 기사로 처리했어요. 개 3000마리가 모여도 그보다는 크게 보도
할 거다. 에이 더러븐 놈들. 퉤퉤퉤……
그래도 한겨레에서는 자세히 보도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