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미당 서정주를 말한다!)-김영진
이름 : 김영진 ( seulk@chollian.net) 날짜 : 2000-09-22 오전 11:19:04 조회 : 128
#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쓴 글인데, 한효석 선생님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선생님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여기에도 올립니다.(군산영광여고 국어 교사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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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수 읽어 보시죠. 제목이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訟詩)>랍니다. 미당 서정주가 쓴 시예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 이여
이 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 이여
이 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새맑은 나라의 새로운 햇빛처럼
님은 온갖 불의와 혼란의 어둠을 씻고
참된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마련하셨나니
잘 사는 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물가부터 바로잡으시어
1986년을 흑자기원 원년으로 만드셨나니
안으로는 한결 더 국방을 튼튼히 하시고
밖으로는 외교와 교역의 무대를 온 세계에 넓히어
이 나라의 국위를 모든 나라에 드날리셨나니
이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 아시안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또 88 서울올림픽을 향해 늘 꾸준히 달리게 하시고
우리 좋은 문화 능력은 옛것이건 새것이건
이 나라와 세계에 떨치게 하시어
이 겨레와 인류의 박수를 받고 있나니
이렇게 두루두루 나타나는 힘이여
이 힘으로 남북대결에서 우리는 늘 주도권을 가지고
자유 민주 통일의 앞날을 믿게 되었고
1986년 가을 남북을 두루 살리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을 발의하시어서는
통일을 염원하는 남북 6천만 동포의 지지를 얻으셨나니
이 나라가 통일하여 흥륭할 발판을 이루시고
쉬임없이 진취하여 세계에 웅비하는
이 민족 기상의 모범이 되신 분이여!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1987년 1월 18일)
<국화 옆에서>를 배울 때 서정주가 어떤 시인인지 아무도 바로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름답게 정제된 <동천(冬天)>을 배울 때도 시인 서정주는 위대한 시인이어야만 했답니다. 그를 바로 알게 되었을 때, 도대체 시는 무엇이고 시인은 무엇 하는 사람인가를 고통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보다 조금 더 컸을 때일 거예요.
문학이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입니다. 전두환 같은 학살자가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국민을 사랑한다고 씨부렁대도 그걸 진심으로 받아 안을 사람 없겠지요. 시인 서정주가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시를 쓴다고 해도 그 시는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진실에서 너무도 먼 그의 삶은 결코 그를 시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게 만듭니다. 삶이 시인 사람을 우리는 진정 아름다운 시인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 따로 놀고 삶 따로 노는 ‘따로국밥’은 감동의 맛을 전해 주지 못합니다. 죽음이 따로 없죠. 감동 없는 문학 그게 어디 문학입니까. 맛이 갔을 때 우리는 그것을 죽음이라 하지요. 우리는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문학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멫천 길의 바다런가
아아 레이테만은
여기서 멫만 리인가……
귀 기울이면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우리의 젊은 아우와 아들들이
그 속에서 잠자는 아득한 파도소리……
얼굴에 붉은 홍조를 띠우고
『갔다가 오겠습니다』
웃으며 가드니
새와 같은 비행기가 날아서 가드니
아우야 너는 다시 돌아오진 않는다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 사람
인씨(印氏)의 둘째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소리 있이 벌이는 고흔 꽃처럼
오히려 기쁜 몸짓 하며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 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발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멫천 길의 바다런가
귀 기울이면
여기서도, 역력히 들려오는
아득한 파도소리……
레이테만의 파도소리……
(*가미가제 : 일종의 글라이더에 폭탄과 갈 때까지의 연료만 싣고 가서는 글라이더에 뭄을 실은 채로 미국 등의 군함과 부딪쳐 자폭하던, 패전 말기의 잔인한 공격법.)
-서정주의 <오장(伍長) 마쓰이 송가(頌歌)> 전문
일제 말기 우리의 위대한 시인 서정주는 이런 시들을 써대며 일제의 귀여운 강아지 노릇을 해댔습니다. 여러분, 위에 적은 시를 잘 감상해 보세요.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 싸우다 기꺼이 죽을 것을 조선 청년들에게 강권하고 있습니다. 가미가제 특공대 자살 노름이 숭고한 애국 행위라며 모든 조선 청년들이 본받을 일이라고 외쳐대는 이 시인이 지금 우리 문단에서 최고의 권위와 찬사를 받고 있는 미당 서정주입니다.
당시 미당은 그렇게 적극적으로 부일(친일) 행위를 해야 할 만큼 문단에서의 위치가 대단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젊은 작가 서정주는 무엇을 바라며, 왜 그렇게 앞장서 일제 주구 노릇을 했을까요? 그가 써댄 부일(친일) 작품은 시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시의 이야기-국민 시가에 대하여(1942, 평론)>,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수필)>, <인보(隣保)의 정신(1943, 수필)>, <스무 살 된 벗에게(1943, 수필)>, <항공일에(1943, 일본어시)>, <최체부의 군속 지망(1943, 소설)>, <헌시(獻詩)(1943, 시)> <보도행(1943, 수필)>, <무제(1944, 시)>, <오장 마쓰이 송가(1944, 시)>
그는 왜, 어쩌자고 문학 전 장르에 걸쳐, 조선어만이 아닌 일본어로까지 시를 써대는 추태를 보였을까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백 년은 갈 줄 알았다.”는 그의 말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일 일제가 패망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짓을 계속했을 것이라는 말인데, 일본의 패망 앞에서 우리의 위대한 시인은 얼마나 깊은 시름에 빠졌을까요….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그 끔찍한 세월을 이기려 죽음의 그림자와 싸우던 제 민족 청년들에게 징병가라고 외치고, 아들을 둔 제 조국의 어머니들에게 지원병 보내라고 그 뛰어난 글 솜씨를 자랑했습니다. 혈서를 쓰며 군속을 지원하는 젊은이를 미화한 미당은 종군 기자 노릇까지 하며 일제를 선전해댔답니다.
일제에 아부하며 산 것도 부족했던지 시대가 바뀌어서도 그의 화려한 아부 경력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해방이 되자 미당은 <조선청년문학가협회> 시분과 회장을 맡으며 우익 진영의 정치 공작에 주도적으로 참여합니다. 1946년 이 단체를 모태로 해서 만들어진 <한국문학가협회>에서도 시분과 위원장을 맡게 되고, 《이승만 박사전》이란 이름의 독재자 이승만의 전기를 집필하기에 이릅니다.
미당 서정주는 1986년 『문학정신』이란 문학 잡지를 만들어 발행인이 되고, 문학이 정치성을 띠어서는 안 된다며 ‘민중 문학’ 진영을 공격하는 일에 앞장섭니다. 그는 전두환 군사 정권을 측면 지원하는 일에 문단 권력을 이용합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최대 성과라 할 ’6월 항쟁’(1987년)을 촉발시켰던 ’4·13 호헌 조치’. 전두환이 장기 집권을 노리고 호헌을 주장하자 그가 중심에 서있던, 관제 어용 단체인 <한국문인협회>는 ’4·13 호헌 조치’를 위대한 구국의 결단이라고 속보이는 아부를 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자기 모순을 보여주었습니다. 서정주는 1981년 전두환 대통령 후보를 위한 텔레비전 지원 연설까지 합니다. 아, 우리의 위대한 시인이여!
천황 폐하의 황은에 감사하던 입으로 독재자를 칭송한 ‘큰 시인’이 <국화 옆에서>를 쓴 미당 서정주라면 여러분도 배신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 옛날, 미당의 시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를 읽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 그리며 동백꽃 보러 선운사에 기어이 찾아가는 정성을 보인 제가 느꼈을 배신감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겠지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그 맑은 시를 가수 송창식이 노래로 들려줄 때 정말 그리운 사람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환해지던 제 어린날이, 서정주가 살아온 괘적 앞에 갈갈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문학적 재능을 앞세워 일본 제국주의를 칭송하고, 시적 재능으로 신군부의 군홧발을 미화한 미당. 그는 지금 우리 문단 최고 시인의 반열에 올라서 있습니다. 아픔입니다. 우리에게 그렇게도 시인다운 시인이 없습니까?
<전두환 대통령 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訟詩)>라는 시를 읽는 재미는 여간 쏠쏠하지 않습니다. ‘아부’도 가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며 일관된 삶을 마지막까지 흐트러뜨리지 않고 이어가려는, 우리 고장 전북이 낳은 한국 현대 문학사 최고의 시인 서정주의 몸부림을 저만 읽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는 이 시를 한국 문학사 최고의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반열에 올려놓고 싶습니다. 하기사 이 시를 두고 <신용비어천가(新龍飛御天歌)>라고 말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미당 서정주, 그의 이름을 ‘곡학아세(曲學阿世)’라는 말을 이해시키는 데 쓰면 잘 들어맞습니다. 권력을 향해 끊임없이, 일관된 자세로 자신의 문학 재능을 팔아먹은 사람. 문제는 이런 해바라기 시인이 한국 현대사 최고 시인이라고들 씨부렁대는 데 있습니다. 제 몫만 누리면 됩니다. 미당은 시어를 꽤 잘 부려쓰고 권력에게 아부 잘하는 ‘시인’답지 않은 시인으로서의 몫만 누리면 됩니다. 제 몫 이상의 찬사를 받는 게 많은 사회는 왜곡이 심한 사회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미당 서정주를 반면교사 삼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