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행으로 봉(?) 잡는 세상-김선구
이름 : 김선구 ( ) 날짜 : 2000-10-25 오전 11:43:25 조회 : 117
김선구(공인회계사)
“요즘 신용카드 열심히 쓰고 계십니까? 아니 1억원이라는 봉을 잡을지도 모르는데 별 관심이 없다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는데 열심히 써야지요, 그것도 가능하면 잘게 쪼개서 말입니다.”
신용카드 복권제도가 국세청 개원이래 최고의 시책이라는 자체 평가를 언론으로부터 접한 기억이 있다. 우리 국민들이 그 요행의 봉을 잡아보기 위해 정말 열심히들 신용카드를 쓰고 있으며 그 덕에 과세의 사각지대에 숨어있던 일부 자영업자의 소득을 꽤나 노출시키는 효과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잘 걷히게 된 세금의 뒷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큰 무엇을 잃고 있다면 `최고의 정책`이라는 찬사는 잠시 유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금이라고 하는 소위 `돈` 얘기 말고, 국민정서라든가 도덕적 가치기준이나 자긍심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이 나라의 세금 몇 푼(몇 푼은 아니겠지만) 더 걷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지 않은가.
신용카드에 복권을 결부시켜 놓으니까 카드를 사용할 때마다 `그저 봉 좀 잡아보려고?`하며 비웃지나 않는지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혹시 없었을까? 정부의 정책이 온 국민을 요행이나 바라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격하시켜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일부에서는 그 요행수의 바람이 지나쳐서 또 하나의 편법이 난무하고 있으니, 하나의 거래를 여러장으로 분할하여 당첨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결국 솔직하게 한번에 한 장씩 카드영수증을 받는 원칙적인 사람은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원칙적인 사람은 요행수 싸움에서도 편법을 쓰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불리해져 버린 것이다.
물론 정부가 이런 편법가들을 그냥 내버려 둔 것은 아니다. 건당 일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당첨의 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일만원 이상이라 해도 10분 이내에 사용된 것은 모두 하나로 보겠다는 등 편법을 제한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궁색한 냄새가 나지 않는가? 한마디로 정부의 시책이 점잖지 못하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직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복권당첨을 통해 봉잡아 보려는 의도도 없이 그저 신용의 수단으로 사용할 뿐이다. 심지어는 복권당첨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드 영수증을 잘게 쪼개는 편법을 모르는 것은 두말할 여지도 없고.
이같이 점잖은 국민에 어울리는 격조 있는 정부라면 요행수의 복권보다는 모두가 공정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점잖게 카드사용의 대가를 누릴 수 있도록 세액공제 한도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연봉 3000만원의 월급쟁이가 신용카드로 700만원을 써봐야 고작 8만원의 세금만 공제되어서야 어디 국민이 점잖을 수만 있겠는가?
다같이 점잖고 격조 있는 국민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리고 정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