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신문 <한겨레>에게 묻습니다-최종규
이름 : 최종규 기자 ( now36379@nownuri.net) 날짜 : 2000-11-06 오전 10:14:41 조회 : 134
“아름다운 우리말만 쓰겠다던 첫마음은 어디로 갔나요”
최종규 기자 now36379@nownuri.net
“아름다운 꿈이 현실에서도 아름답게 나타나게 하자는 꿈이 있습니까?”
신문 <한겨레>는 1988년 이 땅에 국민주로 첫 발을 디디며 수많은 `꿈’을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온통 기득권과 세습사주로 가득찬 언론밭에 `세습’을 떨쳐버린 일이 무엇보다 손꼽히지요. 많은 신문들이 북녘 정권을 `세습정권’이라 헐뜯으면서 자기 신문은 `세습신문’임을 뉘우치거나 고치지 않습니다. <한겨레>는 이같은 두동짐(모순)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삼에스(3s)라 하는 운동경기(스포츠) 이야기를 싣지 않았죠. 국민을 홀리며 사회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일을 안하겠다는 뜻이었죠. 더불어 무척 큰 일이나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한 `한글 신문’을 일궈냈습니다. <독립신문>이 나온 지 백 해가 지나서야 비로서 나온 한글 신문이었습니다. <독립신문>을 만들던 이들은 이미 한 세기 앞서 `모든 이가 쉽게 읽고 사회를 알 수 있도록 신문을 만들어야 함’을 알았지만 지금 언론인들은 국민이 사회를 제대로 알지 못하게 만들 속셈이 있었기에 기사를 어렵게 쓰고 한자를 섞어 쓰고 그럽니다. <한겨레>는 이 또한 버렸습니다.
‘기업가정신 업그레이드돼야’ : <한겨레> 2000년 11월 4일치 컬럼
`컬럼’이란 말도 안 쓰고 `아침햇발’이란 말을 쓰던 <한겨레>. 그 뒤로 열세 해 지난 지금은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운동경기 지면도 아주 눈부시게 발돋움했고 편집 신경도 많이 쓸 뿐더러 광고에 한자나 영어가 들어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보냅니다. <한겨레21> 뒷표지 광고에 `양담배 광고’를 넣어도 되느냐는 목소리가 높아도 자기뉘우침을 안 가지고 지금껏 꾸준히 싣고 있지요.
11월 4일. `국민기자석’에는 “공공 현수막에 외국어”를 쓴 일산 과시행정이 한심하다는 이야기가 한 대목 실립니다. 그러나 바로 위에 자리한 `아침햇발’, 곧 `컬럼’은 `업그레이드돼야’ 같은 말을 버젓이 쓰며 `또 다른 과시언론’을 보여줍니다.
-> (끌어)올려야 / 발돋움해야 / 거듭나야 / 고쳐가야 …
<한겨레>는 빛이 많이 바랬습니다. 사실 처음 신문을 만들던 때 `첫마음’과 `높은 얼’을 나중에 들어온 새내기 기자들까지 이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한겨레>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바랍니다. 또 `국민주’ 신문인 만큼 떳떳하게 얘기하고 고치고 거듭나라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세습신문이 판치던 때 `국민주’로 떳떳하게 나선 신문. 그 힘과 꿈은 지금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요. 광고가 안 들어오고 독자수가 떨어진다는 말은 누구나 하고 있는 말이나 `아름다운 기사로 공신력을 높이며 국민 앞에 나선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듣기 힘들군요. “국민주 신문에다가 한글만 쓰는 신문이 되면 장을 지진다”는 말을 한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더구나 엊그제 <시사저널> 언론기관 평가에서 <한겨레>는 `공신력 으뜸’임이 다시 한 번 드러냈지요.
이 소식은 무얼 말할까요? 한길로 올바르고 떳떳하게 나아가면 그 모습을 사람들이 아름답게 보며 그 아름다움을 시나브로 자기 몸에 버릇들인다는 사실입니다. `꿈’이 `사실’로 거듭난다는 이야기입니다.
1995년 <중앙일보>가 두 번째로 `한글 신문을 하겠다’고 외치며 `中央日報’로 쓰던 신문이름(제호)마저 `중앙일보’로 고쳤습니다. 세로쓰기로 끝까지 버티던 <조선일보>마저도 신문이름은 한자로 쓰지만 기사는 99%가 한글로 쓰고 모두 가로쓰기로 하고 있지요.
아무리 비틀린 신문이고 아무리 어긋나게 제 잇속만 챙기는 신문이라 하더라도 올바르고 참된 길로 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국민주로 만든 신문이 `올바르고 참된 길을 가지 않으면’ 비틀리고 어긋난 길로 가는 신문은 그 길로 그냥 내쳐달려가지요.
김구 어르신도, 여운형 어르신도,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이끌며 `아름다운 나라’를 바란 모든 어르신들은 우리 자신에게 “꿈이 있느냐?”고 먼저 물었습니다. 지금 사회와 현실로는 이룰 수 없는 듯 보여도 “너는 네게 어둡고 슬픈 현실을 아름답게 이끌고 가꾸어나갈 `꿈’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한겨레>에게 묻고 싶습니다. “<한겨레>여, 너에게도 `첫마음’과 `첫꿈’이 남아있느냐”고요.
신문에 이어 <한겨레21>이란 잡지도 시사잡지들이 해오던 낡은 편집과 낡은 한자쓰기를 떨쳐버리도록 이끄는 데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씨네21>이라는 이름이나 이라는 이름은 눈꼽만큼도 길잡이도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시류를 흐름으로 이끌지 못하고 휩쓸린다면 `아름다운 꿈’은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아름다운 말과 글을 참말로 `아름답게’ 가꾸면서 우리 모두 즐겁고 함초롬하게 쓰도록 하겠다던 `첫마음’과 `첫꿈’을 지금도 이어갈 생각이 있는지, 그럴 마음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겨레>에게도 묻고 이 나라에 살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 그래도 “<한겨레>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신문을 보면 너무 형편없고 도대체 생각 한 줌이나 있느냐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러나 “좀 더 낫다”고 하여 올바른 길을 가고 있지 않은 현실을 에돌아갈 수 없기에 이런 기사를 써 봅니다 *
2000/11/05 오전 10: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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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기자는 우리말, 헌책방, 책 문화운동을 하며 여러가지 소식지를 내고 있으며 지금은 국어사전 엮는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98년에 가장 어린 나이로 한글학회가 주는 한글공로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