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 아닌 이스라엘…(퍼온 글)-한효석

제 목
제 정신이 아닌 이스라엘…(퍼온 글)-한효석
작성일
2000-11-28
작성자

[아시아네트워크] ‘불타는 대극장’ 팔레스타인

돌팔매질하는 아이들에게 조준사격하는 이스라엘군의 헬기와 탱크… 국경봉쇄로 경제생활마저 위협당해

(사진/가자 시가지를 지나는 시위대. 이 지역에서 시위는 일상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에는 시민이 없다.”

11월3일 무자마모스크에서 기도를 마친 아흐마드 야신 하마스 지도자는 하루 전 예루살렘 시가지에서 발생한 폭탄공격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전 국민이 총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으며 비무장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는데, 누구를 시민이라 불러야 하나?”

총상자들 가운데 셋에 하나는 아이

정확히 일주일 뒤, 한낮에 베들레헴 거리에는 미제 최정예 공격용 아파치 헬리콥터가 떴다. 그리고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의 무장조직인 파타의 지도자 후세인 아바얏의 자동차가 미사일 공격을 받고 허물어졌다. “우린 적들을 텅 빈 사막 한가운데서 만나기를 바랐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 미사일 공격으로 길가던 팔레스타인 여성 2명이 사망한 데 대한 기자의 질문에 이스라엘 중앙작전사령부 이츠하크 에이탄 소장은 대답했다. “당신들이 본 것처럼 자동차에 대한 공격은 정확했다. 따라서 사과할 일이 없다.”

볼썽사나운 무장들이 눈을 부라리고 하루종일 구급차의 격렬한 사이렌 소리가 귀를 때리고, 시민들은 그날그날의 사망자 숫자를 화제에 올리고 있다.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어디를 가나 마주치는 풍경이다. 두달째 접어든 분쟁은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고, 헬리콥터를 동원한 중무장 이스라엘군은 돌팔매질로 항의하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실탄 사격을 가해 이미 210여명이 넘는 사망자와 4천여명이 넘는 총상자를 냈다. 사망자의 25%가 14살 미만의 어린이들이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은 깊어지고 있다. “아라파트가 책임져야 한다. 동정심을 자극해서 국제적인 여론을 끌기 위한 선전행위다.” “아이들을 시위대 전면에 내세워 희생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공보부 직원들은 핏대를 올린다. 아라파트 의장실의 언론담당총책 모아메드 아드완은 흥분했다. “자식이 무슨 기계부품쯤 되는 것으로 여기는 모양인데, 누가 자식을 파손되도록 던져버리겠는가?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러는 모양이지?”

이 험악한 논쟁 속에서 분명한 것은 오늘도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라말라에서 베들레헴에서 그리고 가자에서도. 이스라엘군의 코앞에서 돌팔매로 맞서는 아이들의 시위는 일상화되었고 그 희생은 하루하루의 항쟁보고서가 되고 있다. 기자는 실려오는 총상자들 가운데 셋에 하나는 분명 아이들임을 취재한 모든 지역의 병원들에서 확인했다. “이스라엘군이 미워요.”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싸웠어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실려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말을 이어가던 열네살 먹은 아브라힘 레제크는 가자의 쉬파병원에서 다음날 숨졌다. 하지만 오늘도 팔레스타인 병원들에서는 또다른 아브라힘 레제크들이 그뒤를 잇고 있다.

기자들에게도 총질하는 도발성

특히 취재기자들 사이에도 악명높은 가자의 문타르 국경은 최악의 전선으로, 최다의 희생자들을 쏟아내고 있다. 라말라나 다른 도시지역의 시위는 적어도 건물 같은 대피처가 있지만, 문타르 국경은 어디에도 몸을 숨길 데가 없는 벌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서 맨 몸의 아이들이 50∼100여m 떨어진 이스라엘 국경초소를 향해 돌을 던지고 이스라엘군은 도로선상에 무차별 사격을 가하고 있다. 총성 한발이 울리면 어김없이 아이 한명이 쓰러지는 곳이 바로 문타르 국경이다. 11월2일 저녁 문타르 국경 현장 취재중에는 엠블런스에도 총격이 가해졌고 취재기자들 바로 발 앞에도 총탄이 날아들었다. 이러다보니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몇몇 종군사진기자들마저 혀를 내두르고 현장을 포기할 정도였다. 말이 난 김에 독자들은 약 두달에 걸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충돌현장에서 취재기자 약 30여명이 총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군의 공격적인 태도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취재기자들에게 반감을 드러내며 5∼6년씩 끌었던 보스니아전쟁이나 소말리아 내전에서 희생당한 기자들의 숫자를 두달 만에 뛰어넘는 ‘놀라운’ 도발성이다.

“이스라엘엔 언론의 자유가 있다. 우리는 기자들의 자유로운 취재를 보장한다.”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이든 군 대변인이든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내뱉는 동안에도 이틀에 한명 꼴로 기자들이 총격을 당하는 실정이다. 이 모두를 우연이라 믿는 기자들은 아무도 없다. “왜 언론들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만 트집 잡는가? 사물과 사실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게 마련인데.” 외무부의 한 간부가 터뜨린 불만을 통해 이스라엘 당국의 신경질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정서가 최근 현장기자들에 대한 총격사건과 무관한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현재 가자를 비롯한 서안지역에서 이스라엘군의 ‘호전성’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실질적인 전쟁상태를 선언했다. “우린 이걸 전쟁이라 부른다. 당신들이 준전쟁이든 분쟁이든 무슨 말로 표현하든 말든.” 그리고 공격용 헬리콥터와 탱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파상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경찰서도, 군간부의 집도 미사일 공격을 받아 파괴당했다. 심지어 라디오 방송사도.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군은 11월15일 오후 2시 서안지역의 파타 지도자 미완 알 비고우티의 집을 공습하겠다고 공개적인 공격경보를 내려 라말라 지역을 공황상태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날 오후 2시, 이스라엘군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공격할 수 있지만, 오늘은 참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전쟁’이 정직하게 말해 기자의 눈에는 조폭들의 시시껄렁한 난동거리로 비쳐지고 있다. 돌 던지는 열대여섯살 먹은 아이들을 향해 무적을 자랑하는 아파치 헬리콥터가 뜨고 탱크가 밀려나와 미사일을 발사하고 기관총이 조준사격으로 불을 뿜는 현장을 어떻게 전쟁이라 이름 붙여야 할지.

그러고도 이 아이들의 돌팔매질과 새총에 ‘견디지 못한’ 탓일까.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경을 폐쇄했다. 현실은 이제 아이들에 대한 공격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시민 전체를 향해 전면적인 ‘피말리기’로 접어든 상태다. 이 국경봉쇄로 이스라엘 영토를 지나야 하는 두개의 분리된 팔레스타인 땅 서안과 가자지구는 사회통합성이 완전히 마비돼버렸다.

동시에 국경봉쇄로 이스라엘과 연결된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특히 가자지구는 두달간의 국경봉쇄로 경제가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국경봉쇄로 80%를 웃도는 가자지역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이건 팔레스타인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이스라엘의 야비하고 교묘한 경제봉쇄다.” 이슬라믹대학 모흐마드 믹다드 교수의 진단에 이스라엘 정부 당국자들은 “경제봉쇄라니? 이건 국경봉쇄다. 안전 문제로 국경을 차단한 것일 뿐이다. 경제적인 타격을 받긴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고 일관되게 대꾸한다.

이스라엘군 철수 가능성은 회의적

(사진/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총상환자의 1/3이 아이들이다)

가자지구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스라엘의 국경봉쇄를 성토하고 있다. “일터로 가지 못해 현금이 바닥났다. 다시 국경을 열기 전에는 먹고살 길이 없다.”

국경봉쇄는 주변 아랍국들의 인도적인 지원 물자마저 차단해버려 원조에 의존해왔던 팔레스타인의 경제구조 자체를 마비시켜 버리고 있다. “이스라엘이 정체를 드러냈다고 보면 된다. 평화회담을 말하면서 등뒤에서 목을 조르는 식이다.” 팔레스타인 자치기구 대변인 마완은 흥분을 억누르며 외교적 수사로 표현했으나 상기된 얼굴을 숨기진 못했다.

뿐만 아니라, 유엔 깃발을 단 구급차가 이스라엘군의 총격을 받아 운전사가 숨지는가 하면, 유엔원조노동사무국(UNRWA)이 설립한 데일 엘-바라-마즈라아 초등학교에마저 로켓포가 날아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보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구호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움직임도 급격히 위축당한 상태다. “현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언론들이 좀더 세밀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스라엘의 공격이 팔레스타인만을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국제사회를 향하고 있는지.” 가자의 UNRWA 대표 라이오넬 브리신은 심각하게 현 사태를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구호단체들은 이미 요원들을 안전지대로 철수시킨 상태다.

파타와 하마스를 비롯한 항쟁단체들은 현 상황을 전면전의 전단계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 5월 레바논으로부터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일은 팔레스타인의 항쟁단체들에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한 일대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가자거리에는 레바논의 대이스라엘 항쟁을 주도했던 헤즈볼라의 깃발이 나부끼고 젊은이들에게는 헤즈볼라의 상징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헤즈볼라처럼 우리도 이스라엘군을 몰아내고 곧 영토를 회복할 수 있다.” 이슬라믹대학의 하마스 단원들은 크게 고무된 상태다.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평화협상 같은 건 장난일 뿐이다. 무장투쟁만이 유일한 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위중 사망 한 이들의 장례식은 모두 사회장처럼 치러지고 그 격렬한 기운은 다시 시위대로 이어지는 것이 가자지구의 일상이 되어 있다.

이러다보니, 최근 가자지구에서는 그동안 강경투쟁을 주도해왔던 하마스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테러리스트’로 불리며 배척당했던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는 ‘도덕성’과 ‘투쟁성’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잡아 왔다는 사실이 최근의 상황 속에서 잘 드러난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라파트 의장과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에 대해서 시민들은 극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뒷구멍을 빠는 놈들이다.” “그들이 주도하는 평화회담을 절대로 믿을 수 없다.” 대개 이런 표현들이 시민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가자에서 바라본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현재의 상황에는 의문이 남는다. 충돌의 확대재생산 속에서 시민들의 희생만 중폭되는 현실을 놓고 볼 때, 과연 이스라엘군의 레바논식 철수가 팔레스타인에서 가능한가에 대한 의심 탓이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무장투쟁의 고삐를 조여 레바논에서처럼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군을 몰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마스의 전략가로 통하는 와엘 아키란의 주장이 실효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레바논의 경우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레바논 정부가 엄연히 존재해왔고, 이스라엘이 한번도 영토를 주장한 적이 없는데다 단 한개의 유대인 정착촌도 건설하지 않았다는 결정적인 차별성에 대한 논의가 전제돼야 할 듯하다. 따라서 현 상황을 무장투쟁의 최후단계로 보는 강경파들의 인식에 일정한 한계가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가자 정치에 대한 취재결론이다.

어쨌든 2000년 11월의 가자는 불난 대극장처럼 느껴진다. 무대의 배우들은 모두 주인공이 된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수많은 청중은 비명 속으로 빨려들고, 이 와중에 극장관리인은 누군가 조명기를 훔쳐 달아날까 무장경비원을 투입해 총질을 하고, 그 바깥에서 기자들은 열을 올리고, 멀리 떨어진 국제시민들은 무심히 흘러나오는 방송을 통해 현장을 잠시 엿보고, 가까운 나라들은 화재현장에 대한 도움을 생각하기도 하고, 힘센 나라들은 극장관리인과 청중의 싸움을 말려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하는. 그리고 피범벅이 된 간판 하나가 떨어져있다. “람보, 팔레스타인에 나타나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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