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를 캤습니다
감자를 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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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감자를 캤습니다. 어른 주먹만한 감자가 제법 먹음직스럽습니다. 올해
?는 감자 농사를 제대로 지은 것 같습니다.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옆 밭
?에서는 장맛비가 오기 전에 캔다며 지난 주에 감자를 캤는데, 감자가 아주 잘았
?습니다. 우리 집 감자도 그렇게 작으면 어쩌나 싶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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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곰이 돌이켜 보니 그 집은 우리보다 씨감자를 1주일 늦게 심고 1주일 먼저 캤
?습니다. 말하자면 우리보다 감자가 보름이나 덜 여문 것이지요. 우리가 제 때 심
?고 제 때 캔 것이라면, 그 집은 감자가 덜 자랐다고 감자에게 불평할 일이 아니
?었습니다. 심을 때, 캘 때를 못 맞춘 농부 탓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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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은 현장 체험이 유행인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1박2일로 여행을 떠나거나, 어렵다 싶은 과제에 도전합니다. 최근에는 여
?러 스타들이 모여 야구를 시작하였고, 한 쪽에서는 밴드를 결성하였습니다. 심지
?어 젊은 남자들이 농사를 지으며 시골에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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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주 다양합니다. 잘 생기고 똑똑하
?고 잘 빠진 사람이 엉뚱하기도 하고, 왜소하고 재주 없고 어눌한데도 속은 깊습
?니다. 어떤 때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큼 한 사람이 수많은 재주를 지녔습니
?다. 그리고 바닥이 금방 드러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랫동안 출연하였는데
?도 싫증나지 않는 사람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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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보아도 재미있는 사람은 그만한 저력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무명으로 지
?내면서 먹고살려고 안 해본 직업이 없다든지, 안 겪어본 굴욕이 없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그 나이에 남들이 지니지 못할 수많은 추억과 고생담과 인생사를 지녔
?습니다. 그래서 별별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고, 별별 재주를 보여줄 수 있었
?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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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그 사람이 재수가 좋아 확 뜬 것이 아니라 그만한 역량을 쌓았기 때문
?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결국 뭐 하나 그냥 되는 것은 없습니다. 잠 줄여 가며 공
?부한 학생은 성적이 좋을 테고, 시간을 아껴가며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은 돈
?을 모을 겁니다. 20대에 고생한 사람은 30대에 결실을 확인할 수 있지요. 40대
?들어 바닥에 떨어졌어도 그 때 다시 땀을 흘리지 않으면 50대에는 더욱 힘들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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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1년 중 절반이 지났습니다. 새해 들어 세운 계획이 얼마나 실천되었습니
?까? 그냥 그렇게 지냈으니, 금년은 대충 보내고 내년부터 다시 시작하시렵니까?
?늦으면 늦은 대로 그때그때 할 일이 있는데, ‘나중에 하지. 천천히 하지.’하
?며 남보다 씨감자를 늦게 심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면 또 남보다 작고 덜 여문
?감자를 캐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