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지옥 갈래
나도 지옥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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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최자가 술잔을 들고 으레 ‘행복이 가득 하시길.’하며 덕
?담을 외칩니다. 그런데 언젠가 50대 중년 모임에 제가 덕담할 일이 생겼습니다.
?50대 나이면 현실에 주저앉을까 싶어, ‘굴곡 있는 삶을 위해’라고 외쳤습니
?다. 어떤 사람은 좀더 고생하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무심히
?‘굴곡 없는 삶을 위해’로 바꾸어 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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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 사람들은 고생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나이 드신 어른들은 가족을 위해
?고생하던 그 때가 가장 좋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행복했
?으며, 배불리 먹고 따뜻한 잠자리만 있어도 즐거웠다는 겁니다. 고생스러운 것
?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였으므로 다른 생각할 틈이 없었지요. 그래서인지 먹
?고살만한 오늘날 자살률이 먹고 살기 힘들던 과거보다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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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어른들은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고 합니다. 저승
?에서 어떤 풍요로움을 보장한다 해도 이승에서 하찮은 존재로 굴러다니는 것보
?다 못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피하지 말라고 합니다. 심
?지어 병들고 늙어도 가족과 이웃의 사랑이 있는 곳이 낫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대놓고 이 좋은 세상을 두고 떠나는 것이 더 억울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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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저승은 종교에서 천당과 극락으로 부르는 곳입니다. 쉽게 생각하면 그 곳
?은 고통이 없고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지요.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모든 사
?람이 잘 먹고 푹 쉬는 곳입니다. 가장이라는 부담과 누구의 배우자라는 의무에
?서 벗어날 수 있고, 병들지 않고 굶주리지 않아도 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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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정작 그런 세상이 있다면 삶이 지루할 것 같습니다. 늘 그렇고 그런 삶
?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어떤 스님은 웃으면서 그런 곳에서 사람들은 심심해서
?못 산다고 하더군요. 지옥이 훨씬 더 인간적이라는 거지요. 지옥은 때가 되면 고
?통스럽지만, 고통 뒤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고 삶에 굴곡과 재미가 있답니다.
?그 스님은 죽으면 지옥에서 살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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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 기구 바이킹을 타고 땅이 푹 꺼지는 섬뜩함을 느낀 뒤 평지가 소중하다는
?것을 압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야 그 성취감이 짜
?릿하지요. 죽을 것처럼 절벽에서 번지 점프를 한 사람이 정작 힘든 일에 부딪치
?면 죽음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걸 두고 어떤 목사님은 슬픔이 오히려 힘이 된
?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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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고생에서 벗어날 것을 꿈꾸지만, 막상 먹고살만하면 죽습니다. 말하자
?면 평생 고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삶인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왕 살 바에
?는 이승에서 개똥처럼 굴러도 재미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는지요. 그 재미가 쏠쏠
?하다고 느끼면 죽은 뒤 지옥에 가더라도 그 스님을 동무삼아 함께 지낼만하지 않
?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