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점짜리, 49점짜리, 0점짜리 나라
사람들이 말로는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만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 관
?계에 이익과 권력이 개입되면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서려고 할 때 ‘제도, 편견, 약점, 폭
?력’을 교묘히 이용할 것이라고 지난 번 글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원
?리는 어느 사회에서 한 계층을 길들일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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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령 그 사회 주류층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면 비주류층이 이쪽을 감히 넘볼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해야 하며, 그것도 일류 대학
?이어야 신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 버립니다. 영어를 잘하고 외국 어학 연
?수를 마쳐야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게 하면, 가난한 계층이 그 한계를 넘어서
?지 못할 겁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고 대등한 기회를 주지 않아야 비주류
?층을 길들이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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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가 적고 자원이 없으면서도,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사회 구성원이 서로 존중
?하며 사는 나라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숨깁니다. 그 대신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 주기도 합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은 무능하다. 똑똑한 몇몇 사람이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므로, 나머
?지 사람들은 당연히 그 사람에 기대어야 한다. 우리는 수출해야 먹고 사는 나라
?니까, 재벌 대기업을 떠받들어야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
?도 고마워해야지,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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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편견이 먹혀들지 않으면, 주류층은 개인 약점을 꼬집어 비주류층을 길들이
?려고 할 겁니다. 예컨대 능력을 높이 산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신체 장애인이라
?며 차별합니다. 취직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경력을 요구합니다. 비정규직이므
?로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이 밖에도 너는 말이 많아서,
?너는 여자라서, 종교가 어떻고 고향이 어디라서 따위로 핑계를 대며 차별받는 것
?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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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으면 주류층은 비주류층의 이성을 마비시켜야 합니다. 다
?른 나라와 전쟁을 벌이거나 테러 위협에 노출시켜 폭력을 사회에 만연시킵니다.
?전쟁을 벌이지 못하는 나라는 집값, 땅값, 물가 폭등으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
?듭니다. 그래서 평생 벌어도 내 집을 장만할 수 없다는 것을 머릿속에 새겨줍니
?다. 돈을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채찍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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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 정권은 계엄, 통행금지, 체포, 구금, 최루탄, 고문, 검열 같은 것으로 사
?회를 통제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합니다. 나중에는 ‘해
?도 안 돼.’하면서 모순된 사회를 바꾸려던 의지를 놓아버리지요. 물론 길고 지
?루하지만 독하게 싸우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쨌든 다른 선진국이 지닌 ‘제도,
?편견, 약점, 폭력’ 수준에 비교하면 우리나라 수준은 지금 몇 점쯤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