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 개똥으로 살기
얼마 전 언론에서 우리 사회의 학력 실태를 보도하였는데, 우리 사회에서 영향
?력 있는 자리를 서울대 출신자가 절반 이상 차지하였습니다. 고위 법관직은 서
?울대 졸업자가 독차지하다시피 합니다. 최근 사법 고시에서도 서울대 출신자가
?합격자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 뒤를 연세대 출신자와 고려대 출신자가 따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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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들은 이 세 학교를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통틀어 ‘SKY’라고 부릅니
?다. 하늘처럼 저 멀리 있는 대학교라는 의미이며, ‘스타(별)’와 같은 맥락으
?로 쓰입니다. 군인 출신 대통령이 통치할 때는 사관학교에 가는 것이 고등학생
?들의 꿈일 때도 있었습니다. SKY 대학교 못지않게 제대 후에도 출세가 보장되었
?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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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대부분 고등학교에서는 입시가 끝난 뒤 이 ‘하늘’과 ‘별’에 진학한
?학생들 이름을 현수막에 담아 오랫동안 교문 위에 걸어둡니다. ‘그 곳’에 가
?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재학생들을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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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 사회가 대학에 가지 않거나, 일류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사람들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느 정치인은 ‘다음 대통령은 대
?학을 나온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며, ‘상고 출신’ 대통령을 얕잡아 보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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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로스쿨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로스쿨에 입학하면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법관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출세의 상징인 법관이 됩니다. 더구나 SKY 대학교가 로스쿨 학생을 뽑는
?다 해도, 비법학과와 타학교 출신을 각각 1/3씩 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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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학력에 자격지심을 지녔던 사람들에게 로스쿨 법이 큰 희망을 주었습니
?다. 고시 학원에 문의 전화가 빗발친답니다.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 지방
?대학 출신자들이 로스쿨에 입학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느냐는 거지요. 말하
?자면 다양한 사람들에게 법관 자리를 개방하는 것 같지만, 결국 로스쿨이 또다
?른 ‘하늘’과 ‘별’로 자리를 잡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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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따지고 보면 하늘과 별을 졸업한 사람이 모두 출세를 보장받는 것이 아
?닙니다. 단 1%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평생 자신과 세속의 기준에 갇혀 살
?아야 합니다. 그렇게 좋은 곳을 졸업하고도 출세하지 못했냐는 것이지요. 말하
?자면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하면 교사가 되는 것이 당연한데도, 교사를 하
?려고 서울대학교에 가느냐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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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하늘과 별을 졸업한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로움을 잃고
?삽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 일 때문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를 의식해야 합니다. 축구 선수가 대표 선수가 되지 않으면 어느 날 빵 가게 주
?인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인데도, 그 축구 선수는 남들
?이 실패한 인생으로 볼까봐 어색해 하고 부끄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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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어른들은 ‘개똥으로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하였지요. 아무리 저쪽 ‘저
?승’이 좋은들 하찮아도 자유로이 굴러다니는 개똥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남들
?이 나를 보지 않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삽니다. 남의 나라로 떠난 사람들이 그
?곳에서 궂은일을 하면서도 마음편한 것과 이치가 같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
?들은 ‘개똥’처럼 살지 않고, 저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강남, 유학, SKY대학
?교, 로스쿨, 법관, 대통령’ 같은 별을 보며 ‘개똥’을 밟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