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무섭다 – 고려대 교수의 석고대죄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제 아무리 수양이 잘되고 학식이 높아도 사람은 의식주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현들은 현실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야 진실
?을 볼 수 있다며, 꼭 가져야 하더라도 되도록 덜 지니라고 가르칩니다. 오죽하
?면 사제들을 독신으로 살게 합니까? 수도자 자신의 욕심을 끊기도 어려운데, 그
?수도자가 가족까지 챙기노라면 탐욕에서 더욱 헤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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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가진 것이 적은 사람들은 현실이 고달파도 성현 말씀을 위안으로 삼습니
?다. 재물이 적으니 가난한 사람들 영혼은 그만큼 부자들보다 자유로우리라 믿습
?니다. 그리고 돈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세상 전부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에 충격을 주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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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2일 고려대학교에서 재벌 회장에게 명예 박사를 주려고 할 때 고대 학
?생들이 반대 시위를 벌였지요. 그랬더니 나이 지긋하고 학문도 충분히 쌓은 교수
?들이 그 사태에 책임을 느껴 무더기로 보직을 내놓았습니다. 또 지금은 관련 학
?생들을 징계하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이렇게 대처하는 것은 모두 재물 때문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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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회장은 이 학교에 400억 원을 주었습니다. 번듯한 건물도 지어주었습니
?다. 그 학교 졸업생들이 그 재벌 회사에 많이 취직합니다. 그런 물주를 건드려
?놓았다고 보고, 고려대 교수들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아주 불편해 합니다.
?재벌 회장이 이번 사태를 ‘젊은이의 열정’으로 받아들여 이해하겠다고 하였지
?만, 그 회장 마음속에 남아있을지 모를 앙금을 고대 교수들은 마저 걷어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관련 학생 징계 절차를 밟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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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습들을 보니 옛날 왕조 시대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절대 권력자인 임금
?님이 분노하면, 그 분노가 풀릴 때까지 왕자나 신하는 석고대죄라는 이름으로 임
?금님 앞에서 죽여줄 것을 간청합니다. 살고 싶으면 그만큼 더욱 간절하게 죽여
?줄 것을 빌어야 합니다. 그렇게 절실히 임금님께 복종을 맹세하고, 임금의 신뢰
?를 회복해야 겨우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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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고려대 교수들이 돈 앞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를 합니다. 보직을 사퇴하
?고, 학생을 징계하여 회장님 분노를 달래려 합니다. 교수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수양과 학문을 다 던지고 있습니다. 지성과 진실을 주창하던 대학이 이 정도니,
?재물이 아주 무섭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사람들이 왜 ‘돈돈’하며 정신을
?빼놓고 사는지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돈을 향해 힘껏 달릴 것
?을 다짐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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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참, 고대 학생들은 징계 받지 않을 겁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징계하면 학
?생들을 이해하겠다는 재벌 회장님의 덕과 명예에 누를 끼치게 됩니다. 석고대죄
?하며 입으로 죽여 달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죽고 싶지 않듯이, 징계하겠다고 소리
?를 쳐야 회장님이 말릴 거라는 것을 잘 알고 학교에서 ‘생쑈’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