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난 보낸 분들에게

제 목
나이를 먹는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난 보낸 분들에게
작성일
2005-04-22
작성자

가족 중에 누가 죽으면 사람들은 억장이 무너진다고 합니다. 이 말은 억장만큼
?높이 쌓은 성이 무너진다는 뜻이니, 하늘을 찌르던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911 테
?러로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는 마음과 비슷할 겁니다. 그만큼 살아남은 사람
?들에게 주는 충격이 크며, 돌아가신 분의 빈 자리가 큽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이 그 빈 자리를 채워야 하므로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식을 모두 조금씩 바꿔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
? 예를 들어 아침마다 대문에 떨어진 신문을 집어오는 일은 큰 애가 맡아야 합니
?다. 재활용품은 작은 애가 분리해야 하며, 욕실 바닥과 거울을 닦는 것은 가족
?중에 또 누가 맡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족들은 돌아가신 분이 일상적으로 하던
?크고 작은 일을 조금씩 나눠 맡으면서 새로 해야 하는 일을 힘들어하고, 돌아가
?신 분을 그리워하고, 묵묵히 그 일을 감내한 그 분에게 고마워하기도 합니다.
?
? 언젠가 치과 병원에서 이를 뽑았습니다. 뽑은 곳이 아무는 대로 치과에 다시 오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잊고, 몇 달을 무심히 보냈습니다. 그런데 뽑은 이와
?맞닿았던 윗니가 어느 날부터 지끈거리며 아팠습니다. 병원에 가니 윗니가 조금
?내려앉았다고 하더군요. 오랜 세월 아래 위로 맞물려 지내다가 아랫니가 없어지
?자, 윗니가 그 빈 자리로 들어온 거랍니다. 물론 뽑은 이의 좌우에 있던 이도
?빈 자리쪽으로 조금 이동하였구요. 턱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을 것 같았던 이도
?빈 자리가 생기면 그곳을 채우려고 움직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비는 자리를 채우
?려면 그 주변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
? 이를 뽑고 이 몸살을 앓는다는 것은 결국 입 안에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썩은 이를 뽑으면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빈 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출발선에 선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의 빈 자리를 채워나가면서 한 가정의 역량이 커지기도 하고, 죽은 사
?람과 남은 사람의 사랑, 또는 남은 사람끼리의 사랑이 돋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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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빈 자리가 생기며 자기에게 새로 늘어난 몫을 아주 버거
?워하며 거부합니다. 나이 들면서 당연히 조금씩 더 감당해야할 몫을 자꾸만 피하
?려고 합니다. 그리고 빈 자리가 생기기 전과 똑같이 삽니다. 쓰던 대로 쓰고 하
?던 대로 하면서, 판을 새로이 짜며 새로 생긴 의무는 외면합니다. 어떤 때는 그
?빈 자리를 몽땅 한 사람에게 떠넘깁니다. 그리고 네가 맏아들이니까, 네가 아내
?이니까 가족을 위해 감당하라며 자기 편하자고 그 한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요.
?
? 교황도 서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은
?언제고 남은 사람들의 몫이지요. 그러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남겨놓
?은 일을 당연히 조금씩 나눠 맡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
?은 늙어갑니다. 또 그렇게 내 몫을 키워나가다가 때가 되면 죽고, 그 몫을 또 남
?은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었습니다.
?
?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 권리는 줄고 의무는 많아집니다. 즉, 나이를 한 살 더 먹
?는다는 것은 슬프고 힘들 때일수록 솔선하여 감당해야할 몫이 더 커졌다는 뜻입
?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받으려 하지만, 알고 보면
?대접할 일이 더 많아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