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노릇하기 힘들다

제 목
어른 노릇하기 힘들다
작성일
2004-09-16
작성자

지난 9월 9일에 우리 사회 ‘원로’를 자처하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국무
?총리와 장관, 국회의장 등을 지내던 1500여 분이 시국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분들 말로는 지금 우리 나라가 친북, 좌경, 반미 세력 손아귀에 들어갔다는군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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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16일에는 최근덕 성균관장이 평화 방송에 출연하여 호주제 폐지를 추진
?하는 대통령과 여야 국회의원을 비난하였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호주제를
?폐지하여 가정을 파괴하고 민족의 전통을 깨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필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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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에 따라 사는 것이 바뀝니다. 그러니 어차피 바뀔 것이라면 빨리 바꾸자고
?하는 사람을 ‘진보’라 하고, 천천히 바꾸자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합니다.
?물론 아예 바꾸지 말자는 사람을 ‘수구’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어 여자 행실
?은 자고로 조선 시대가 기준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수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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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적인 사람이 보수적인 사람을 답답해하는 것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는 것이지요. 거꾸로 생각하면 보수적인 사람은 진보적인 사람들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다고 느낍니다. 천천히 바뀌어도 되는데, 지금 변화 속도도 소화하기 힘든
?데 진보랍시고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닌가 싶겠지요.
?
? 그래서 그런 다양한 생각을 통합하려면 서로 만나서 서로 속을 털어놓아야 하지
?만, 그래도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다수결로 결정합니다. 절반 이상만 찬성하면 서로 그 결정을 따르겠다고 약속하
?는 거지요.
?
? 이렇게 사회는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상대방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 유지
?됩니다. 오늘날 호주제를 폐지하는 상황에 온 것은 과거에는 호주제를 유지하자
?는 사람이 다수였으나, 이제는 폐지하자는 사람이 절반을 넘어 다수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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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수가 찬성하면 그걸 승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까지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다리지요. 그런 과정을 거쳐 박정희도, 전두환도 대통령이 되었고,
?노무현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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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 성명을 발표한 1500여 분들도 이제는 다수결로 뽑힌 노무현을 대통령으
?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자 생각하는 것에 동조하는 사람이 다수가 될 때
?까지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
? 대통령이고 국회의원이고 다 필요 없으니 무조건 내 말이 옳다고 따르라고 하
?는 것은 다수결이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무시하고, 뒤집어엎겠
?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나이 드신 분들이 합리적 보수가 되지 않
?으면, 젊은 사람들한테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로 몰리기 쉽습니다. 말하자면
?내 탓이지, 네 탓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