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 – 대중 사회의 허와 실

제 목
첨삭 – 대중 사회의 허와 실
작성일
2004-08-20
작성자

대중 사회의 허와 실

박세영(대일외고 3)

현대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대중 문화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로 상반된 시각을 지니고 있다. 한 가지 시각은 문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면서 개인의 의식이 신장되고, 선별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는 입장이다. 그로 인하여 이전의 차별적 억압의 사회에서 느낄 수 없던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대중 매체의 조작을 통하여 오히려 사람들의 의식이 획일화되어 간다는 입장이다. 미디어는 그 자체에서 선별적 정보를 가공하여 내보내므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수동적인 정보 수용의 객체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외면적으로 개인의 삶은 훨씬 개방적이고 주체적이 되었으며 자유로워졌다. 이전과 같은 신분차에 의한 억압도 찾아보기 힘들고, 법에만 저촉되지 않는다면 도덕적 비난을 받을지언정 어떤 행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미디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정보들을 쏟아내고, 수용자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만 취사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같이 영화관에서조차 애국가를 부르고 뉴스를 보지 않아도 된다. 억압에 반대하는 개인들의 행동은 사회를 더욱 자유로운 방향으로 진보시켜 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개인이 존중되고 있으며 개인주의는 20세기 이후 당연한 사회적 가치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개성의 추구가 당연한 덕목으로 받아들여지고 개성 없는 사람들은 구식으로 취급받는다. 이렇듯 생활양식에서의 자유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자유로워진 생활 양식이란 것을 따져보면 본질적 자유, 의식의 자유는 오히려 퇴색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대중 문화, 대중 사회라는 말 자체부터 ‘개인의 자유’라는 말과 모순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대중’이란 ‘대중 사회론’의 입장에서 동질화, 평준화된 존재를 의미한다. 평준화란 단순히 물질적 측면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물질 문화의 변화는 정신적, 의식적 문화의 변화와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유행’이라는 것은 정신적 측면의 획일화를 의미하고 그것은 다시 정신이 억압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무분별하게 이미지화된 한 명의 스타를 추종하고 모방하는 현실을 볼 때 개별성과 선별력이라는 것이 사회의 영향력에 얼마나 구속되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선택하도록 강요된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사회 명목론’과 ‘사회 실재론’을 자주 언급한다. 여기서 두 이론은 모두 개인과 사회는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두 이론을 절충하면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사회가 개인의 행동을 구속하기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사회가 개인보다 큰 영향력을 자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과 사회가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것이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따져볼 수 있는 정확한 눈이 필요하다. 객체가 아닌 능동적 주체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개인이 사회에 더욱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강평)

모처럼 고3 학생 글이면서, 잘 쓴 글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사실 지금쯤이면 고3은 이미 논술 글쓰기가 자리를 잡았을 때이다. 즉, 지금은 주어진 문제를 파악하여 분명하게 주제를 잡는 일만 남았지, 사실 그 주제를 어떤 구조에 담아 어떻게 확장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는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효율적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고3 학생이 이런저런 말로 원고지를 채우고 있다면 그것은 한정된 원고량을 채우는 요령만 익히는 것이다. 논술은 채점자가 꼼짝 못하도록 수험생이 논리를 펴야 하는 글이지, 원고량으로 승부하는 글이 아니다.

박세영 학생은 본론 두 단락을 포함하여 자기 글을 모두 네 단락으로 나누고 서론-본론-결론 원고량을 적절히 안배하여 짜임새가 단단하였다.

박세영 학생은 서론에서 사람들이 대중 문화를 상반된 시각으로 본다며 그 두 시각을 비교하며 출발하였다. 이런 방식은 간단하면서도 자신이 본론에서 논의할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아주 효율적이다.

본론 1인 둘째 단락에서는 문화의 대중화가 대중 사회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치고 대중 사회를 자극하였는지를 잘 정리하였다. 본론 2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자유의 본질을 분석하며, 실제로 개인들은 아직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본론 두 단락에 군더더기 문장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잘 정리하였다.

결론 단락은 결론 단락답게 원점에서 다시 차분히 시작하였다. 즉,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거론하여 그 둘이 결코 모순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 다음, 개인이 부단히 노력해야 사회에 종속되지 않는다고 마무리하였다. 아쉽다면 ‘개인의 각성(성찰)’에 ‘(대중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역량을 키워주는) 제도적 장치’까지 언급하였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이 글은 잘 쓴 글이지만, 박세영 학생 글은 너무 말끔하다. 각 단락에서 구체적인 예를 거론하지 않고 원론적인 문장으로만 설명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예시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일뿐만 아니라 채점 교수가 점수를 매기는 평가 항목이며 기준이다. 핵심을 두고 여러 문장으로 빙빙 겉도는 것보다 제대로 된 예시 하나가 더 낫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문장에서 박세영 학생은 1인칭 서술어를 남용하여 문장이 길어졌으며 생활글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