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파병은 미친 짓이다
김선일 씨가 국제 분쟁에 휘말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라크에서 처절하게
?죽자, 파병에 찬성하는 국민이 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귀신 잡는
?해병대를 보내 이라크 무장 집단을 쓸어버리자고 주장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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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말이야말로 우리 군인을 이라크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합니
?다. 지금 우리 나라 군인이 전투를 치르다 죽은 것도 아니고, 자기와 직접 관계
?가 없는 민간인이 죽었는데도 사람들이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내자고 합니다. 그
?러니 실제로 이라크에서 우리 군인들이 퍽퍽 쓰러진다면 우리 국민은 완전히 꼭
?지가 돌아버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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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참전 군인들이 전투 중에 자기 눈 앞에서 동료가 퍽퍽 쓰러진다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상병, 박 일병을 부르며 기관총을 들고 미친 듯이 적을 향해 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같은 민족이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지난 1980년 광주
?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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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이성과 상식이 통하지 않고 광기와 폭력이 난무합니다. 지난 번 포로
?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 군인들을 상대로 드러낸 학대와 야만과 반인권을 우
?리는 똑똑히 보았지요. 미국 정부는 미군 일부 병사의 문제인 것처럼 발뺌하였습
?니다. 그러나 여리디 여렸던 린디 잉글랜드라는 여군이 이 몇 달 사이에 가족들
?조차 믿지 못할 만큼 군대라는 조직에서 잔혹하게 변했습니다. 전쟁은 살아남아
?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지, 컴퓨터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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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언덕에 있는 풀을 낫으로 베다가 새카만 뱀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 손
?가락만한 굵기였으므로 그 뱀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풀밭에
?들어갈 때 꼭 장화를 신었습니다. 특히 뱀을 본 곳에서는 항상 긴장하였는데, 어
?떤 때는 땅바닥에 있는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하여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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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이렇게 조그만 경험에도 늘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꽃같은 시절
?에 어떤 젊은이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사람 죽는 것을 예사로 겪었다면 설
?령 전투에서 살아남아 귀국한다 해도 개인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습
?니다. 지금 베트남 참전 용사와 그 가족이 나서서 파병을 반대하는 것은 전쟁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평생 지고 가야할 비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
?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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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전쟁은 아무리 애국, 민주화, 국익 같은 좋은 말로 포장해도 폭력과 비이
?성이라는 속성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실험을 통해 그런 사실을 입증
?하더군요. 모의 실험이라는 사실을 알려도 피실험 대학생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
?로 눈 앞에 있는 가짜 포로를 고문하려고 전기 스위치를 올리더라는 겁니다. 애
?국과 이익과 출세를 적당히 섞어 놓으면 제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순식간에 변
?해 짐승 같은 짓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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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자녀에게 자상한 사람도 취조실에 들어서면 이근
?안, 문귀동처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고문 기술자가 됩니다. 애완견이 밥을 안 먹
?는다고 울먹이는 여린 여자도 교실에 들어서면 너 잘 되라고 채찍질하는 거라며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체벌 교사가 됩니다. 폭력은 사람들이 심성과 도덕
?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부추기는 대로 개인이 휘
?둘릴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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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911 참사 이후 미국 국민 다수가 지지한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
?공은 사람이라면 가야할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김선일 씨 유족과 친지들이
?죽은 사람 마음을 잘 헤아려 “이라크, 당신을 용서한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다”고 하며 이라크와 이라크 국민을 끌어안았습니다. 이 길이 우리 국민이 가야
?할 길이고, 다 같이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