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파병은 미친 짓이다

제 목
그래도 파병은 미친 짓이다
작성일
2004-07-12
작성자

김선일 씨가 국제 분쟁에 휘말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라크에서 처절하게
?죽자, 파병에 찬성하는 국민이 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귀신 잡는
?해병대를 보내 이라크 무장 집단을 쓸어버리자고 주장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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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말이야말로 우리 군인을 이라크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합니
?다. 지금 우리 나라 군인이 전투를 치르다 죽은 것도 아니고, 자기와 직접 관계
?가 없는 민간인이 죽었는데도 사람들이 이라크에 전투병을 보내자고 합니다. 그
?러니 실제로 이라크에서 우리 군인들이 퍽퍽 쓰러진다면 우리 국민은 완전히 꼭
?지가 돌아버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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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참전 군인들이 전투 중에 자기 눈 앞에서 동료가 퍽퍽 쓰러진다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 상병, 박 일병을 부르며 기관총을 들고 미친 듯이 적을 향해 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같은 민족이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지난 1980년 광주
?를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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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은 이성과 상식이 통하지 않고 광기와 폭력이 난무합니다. 지난 번 포로
?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 군인들을 상대로 드러낸 학대와 야만과 반인권을 우
?리는 똑똑히 보았지요. 미국 정부는 미군 일부 병사의 문제인 것처럼 발뺌하였습
?니다. 그러나 여리디 여렸던 린디 잉글랜드라는 여군이 이 몇 달 사이에 가족들
?조차 믿지 못할 만큼 군대라는 조직에서 잔혹하게 변했습니다. 전쟁은 살아남아
?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지, 컴퓨터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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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언덕에 있는 풀을 낫으로 베다가 새카만 뱀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 손
?가락만한 굵기였으므로 그 뱀이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는 풀밭에
?들어갈 때 꼭 장화를 신었습니다. 특히 뱀을 본 곳에서는 항상 긴장하였는데, 어
?떤 때는 땅바닥에 있는 나뭇가지를 뱀으로 착각하여 깜짝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
? 사람들은 이렇게 조그만 경험에도 늘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꽃같은 시절
?에 어떤 젊은이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사람 죽는 것을 예사로 겪었다면 설
?령 전투에서 살아남아 귀국한다 해도 개인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습
?니다. 지금 베트남 참전 용사와 그 가족이 나서서 파병을 반대하는 것은 전쟁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평생 지고 가야할 비극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
?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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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전쟁은 아무리 애국, 민주화, 국익 같은 좋은 말로 포장해도 폭력과 비이
?성이라는 속성을 감출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실험을 통해 그런 사실을 입증
?하더군요. 모의 실험이라는 사실을 알려도 피실험 대학생들이 애국이라는 이름으
?로 눈 앞에 있는 가짜 포로를 고문하려고 전기 스위치를 올리더라는 겁니다. 애
?국과 이익과 출세를 적당히 섞어 놓으면 제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순식간에 변
?해 짐승 같은 짓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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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하자면 이웃에게는 친절하고 자녀에게 자상한 사람도 취조실에 들어서면 이근
?안, 문귀동처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고문 기술자가 됩니다. 애완견이 밥을 안 먹
?는다고 울먹이는 여린 여자도 교실에 들어서면 너 잘 되라고 채찍질하는 거라며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체벌 교사가 됩니다. 폭력은 사람들이 심성과 도덕
?으로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그 조직이 부추기는 대로 개인이 휘
?둘릴 수밖에 없는 제도적인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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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911 참사 이후 미국 국민 다수가 지지한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
?공은 사람이라면 가야할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김선일 씨 유족과 친지들이
?죽은 사람 마음을 잘 헤아려 “이라크, 당신을 용서한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한
?다”고 하며 이라크와 이라크 국민을 끌어안았습니다. 이 길이 우리 국민이 가야
?할 길이고, 다 같이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