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 – 네트워크에서 꿈꾸는 자유

제 목
첨삭 – 네트워크에서 꿈꾸는 자유
작성일
2004-07-20
작성자

네트워크에서 꿈꾸는 자유

이완혁(대일외고 3)

올해 초 교육부에서는 사교육비 경감의 방안으로 수능을 교육방송과 연계하여 출제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4월부터 시작된 강의는 처음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여 현재 60~7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한 상태다. 방송 강의가 이렇게 놀라운 보급율을 보이게 된 배경에는 초고속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원하는 시간에 컴퓨터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강의를 수강할 수 있게끔 한 것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성과는 공간의 극복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광고에서 나왔듯, 서울 강남의 학생과 시골의 학생이 마치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것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 학자가 네트워크 공간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가깝게 느낀다고 말한 “작은 세상”과도 맥을 같이할 것이다.

컴퓨터에서만 여러 구성원을 연계하는 네트워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통, 통신, 기업, 각종 조직 등에서도 요소요소가 복잡하게 연결된 형태를 찾을 수 잇다. 특히, 첨단 기술의 발달은 교통, 통신 및 정보 교류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 예가 교통 카드이다. 7월부터 서울시는 새로운 교통 시스템을 적용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카드 하나로 연계시키는 시스템이 그것이었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것처럼 첨단 기술이 필수적이었는데, 그 기술은 승객의 정보를 기계가 인식하는 기술이었다. 승객의 정보라는 것은 환승 여부를 말한다. 환승 여부가 중요했던 이유는 일정 구간 내에서는 몇 번의 환승을 해도 처음 요금을 그대로 계산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승객들은 카드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버스든 지하철이든 추가 계산없이 승차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연결망 사회의 도래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부정적 측면 또한 배제할 순 없다. 특히, 한국 사회 속의 인간 사이에서는 매우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족, 친척, 출신 학교, 심지어 출신 지역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연줄’ 혹은 ‘빽’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출세나 승진의 최우선 조건으로 능력보다는 연줄을 꼽았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실제로 대다수 큰 규모의 병원들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병원 원장의 출신 대학에 따라 고위급 간부 의사들부터 레지던트까지 모두 같은 대학으로 이루어진 것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학들이 비록 명문대학이라 할지라도 타대학 출신의 의사가 실력이 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즉, 능력을 최우선으로 삼아야할 의사 세계에서도 엄연한 줄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 고려 시대엔 ‘음서’라는 제도가 있었다. 정통한 관리 채용 방식인 과거가 아니라 조상의 음덕이라는 명목으로 고급 관리의 자제를 채용하는 제도였다. 이는 귀족 정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기득권의 세력을 유지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의 진출을 제한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연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능력이 아닌 관계에 의해 사람이 평가받는다면 고려 후기에 이미 나타났던 전철을 다시 밟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개개인들의 의식 자체를 성숙시키는 한편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특정대학 출신자가 일정수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개인 인적 사항의 인맥은 오히려 떳떳이 밝혀 관련 부서를 지원하지 못하게 제한을 할 수 있게끔 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강평)

모처럼 고3 학생 글이면서, 잘 쓴 글을 만나게 되어 기쁘다. 사실 지금쯤이면 고3은 이미 논술 글쓰기가 자리를 잡았을 때이다. 즉, 지금은 주어진 문제를 파악하여 분명하게 주제를 잡는 일만 남았지, 사실 그 주제를 어떤 구조에 담아 어떻게 확장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는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효율적인 구조를 이해하지 못해, 고3 학생이 이런저런 말로 원고지를 채우고 있다면 그것은 한정된 원고량을 채우는 요령만 익히는 것이다. 논술은 채점자가 꼼짝 못하도록 수험생이 논리를 펴야 하는 글이지, 원고량으로 승부하는 글이 아니다.

이완혁 학생은 본론 두 단락을 포함하여 자기 글을 모두 네 단락으로 나누고 서론-본론-결론 원고량을 적절히 안배하여 짜임새가 단단하였다.

이완혁 학생은 서론에서 교육부에서 추진한 교육 방송을 예로 들면서 공간적 한계를 네트워크를 통해 극복하였으며 이런 네트워크는 이미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손쉬운 소재를 이용하여 네트워크를 설명하면서도 ‘작은 세상’이라는 단어로 연결하는 솜씨가 탁월하였다.

본론 1인 둘째 단락에서도 얼마 전에 실시한 교통 카드를 예로 들며 첨단 기술이 발전할수록 여러 구성원이 복잡하게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아주 잘 설명하였다. 다만 긴 단락 끝을 ‘추가 계산 없이 승차할 수 있게 되었다.’로 끝내는 바람에, 그 단락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심 생각(소주제)이 ‘네트워크의 긍정적인 측면’이었다는 것을 소홀히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럴 때는 그 단락 끝에 중심 생각을 한 번 더 보태 양괄식으로 처리해야 했다. 즉, ‘다시 말해 네트워크는 복잡한 현대를 다양한 형태로 연결하며 인간 생활을 좀더 다양하고 풍족하게 하였다’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하여야 한다.

본론 2인 셋째 단락에서는 네트워크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한국 사회의 연줄을 설명하였다. 구체적인 예로 의사 집단의 학맥을 거론하였는데, 그런 사례가 있다고 의사 세계가 마치 다 그런 것처럼 확대해 말하는 것은 ‘일반화 오류’이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는 ‘가능성’으로도 충분히 설득할 수 있으니 지나치게 ‘과장’해서는 안 된다. 이 단락도 양괄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았다.

결론 단락인 끝 단락에서 고려 시대 음서 제도가 기득권 세력이 서로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한 것은 아주 참신하였다. 결론에서 마무리할 ‘오늘날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주제를 훨씬 돋보이게 하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다만 끝에서 ‘개인 의식과 제도적 장치’를 거론한 것은 좋았으나, 뒤에 있는 ‘특정대학 출신자 제한, 인맥 제한’ 같은 조치는 너무 구체적이고 지엽적인 방법을 거론한 것이다. 본론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이 없으니, 결론에서는 아주 일반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낫다.

이완혁 학생 글은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이완혁 학생은 각 단락에서 구체적인 예를 거론하였기 때문이다. 예시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이해시키는 방법일뿐만 아니라 채점 교수가 점수를 매기는 평가 항목이며 기준이다. 핵심을 두고 여러 문장으로 빙빙 겉도는 것보다 제대로 된 예시 하나가 더 낫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문장에서 잘못된 버릇을 지적한다면 이완혁 학생은 ‘의, 것’을 남용하고 서술어를 장황하게 돌려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버릇이 있다.

(박기복 의견)
한효석 선생님의 평가부분을 읽고 제 생각과 조금 달라 이렇게 답글을 답니다.

저는 위 학생의 글이 전체적인 글쓰기 솜씨나 구성이 좋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결론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못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글을 읽고 ‘네트워크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연줄없는 사회, 능력이 우선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글을 잘못 이해했는지 몰라도, 최종 결론부분에서 주제를 명확하고 간단하게 드러내는 문장이 빠졌다고 생각됩니다. 결론부분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못함으로 인해 논리 전개가 깔금하게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는 이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본론에서 최근 네트워크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장점과 기존 네트워크(연줄)의 단점을 거론하였으면,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주는 네트워크의 장점을 살리고 기존 잘못된 네트워크의 폐해를 극복하자거나,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해 기존의 잘못된 네트워크를 극복해나가자는 식으로 결론이 맺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효석 답변)
님께서 지적하신 것이 모두 옳습니다…

이 글 결론 부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그래서 강평에서 결론을 일반적인 문장으로 마무리하라고 지적한 것이지요…

그 일반적인 문장이 바로 님꼐서 지적한 “새로운 기술이 가져다주는 네트워크의 장점을 살리고 기존 잘못된 네트워크의 폐해를 극복하자거나, 새로운 네트워크를 통해 기존의 잘못된 네트워크를 극복해나가자”가 되겠지요…

그리고 이 글 결론을 ‘네트워크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로 본 것은 이 글 본론에서 네트워크의 장점과 단점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결론 단락에서 “개인 의식과 제도적 방안”이라는 단어를 필자가 언급하였기 때문이지요..

님께서 ‘연줄없는 사회, 능력이 우선되는 사회’를 지적하였지요.

그러나 저는 이 글 필자가 사람을 능력으로 평가해야 주장하면서도, 연줄(네트워크) 자체를 아예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결론에서 태도가 분명치 않아, 읽는 사람마다 결론을 달리 보고 있습니다.. ㅠ.ㅠ)

저와 생각이 거의 비슷하므로 이견이 아닐 겁니다. 글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솜씨로 보아 글을 아주 잘 쓰실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