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제도와 선거 연령

제 목
입시 제도와 선거 연령
작성일
2003-11-6
작성자

제가 사는 종합 운동장 근처 큰 도로에는 가로수로 은행나무를 심었습니다. 노
?란 은행잎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그야말로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러
?고 보니 시내 가로수에도 가을이 깊었고, 내장산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단풍이
?온 산을 아름답게 덮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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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계절, 수능 시험을 보던 여고생이 시험장을 빠져나와 시험
?장 옆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지만, 정
?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사람들은 벌써 자살을 아이 탓으로 돌립니다. 1교시인 언
?어 영역 시험을 못보았다, 평소 성적이 좋지 않았다, 성격이 내성적이었다고 주
?장합니다.
?
? 그러나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수능 시험을 전후로 200명쯤 죽는답니다. 그
?렇게 죽은 아이들이 학력고사 이후 지금까지 7천 명쯤 된다니, 이라크에서 총을
?들고 전쟁을 치르는 미군보다도 더 많이 죽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 아이들은 그
?아름다운 시절을 즐기지 못하고 대학 입시라는 전쟁터에 내몰려 온 몸을 던집니
?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청소년들이 죽는다고 청소년을 탓할 것이 아니라 그 전
?쟁터에서 빠져나와야 죽을 일이 없습니다.
?
? 앞으로도 이런 순교자가 더 있을 겁니다. 채점을 대강 해보고 점수가 예상대로
?안 나와도 죽고, 점수를 최종 통보하는 날에도 죽고, 다른 사람들 점수가 잘 나
?와도 죽습니다. 또 대학에 떨어져도 죽고, 원하는 대학이 아닐 때도 죽겠지요.
?
?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겠다구요? 그럼 청소년들에게 지금 뭘 원하는지 물
?어보세요. 아무도 청소년들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이 참에 국회의원과 대
?통령을 뽑을 수 있는 선거 나이를 스무 살에서 열여덟 살로 내립시다. 세상을 바
?꿀 수 있는 힘을 18세 ~ 20세 청년들에게 쥐어주면 이 엉터리 같은 입시 제도가
?해결됩니다.
?
? 젊은이들 표를 얻으려면 정치인들이 청소년, 청년들이 바라는 정책을 궁리하면
?서 입시 제도를 손볼 겁니다. 표를 얻으려고 노인정에 가서 큰절을 하는 국회의
?원 후보자들이 이제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 가서 큰절을 할 겁니다. 1998년에도
?백열아홉 나라 중 82%인 아흔여덟 나라의 선거 나이가 18세 이하라고 하니, 오히
?려 우리는 너무 늦었습니다.
?
? 아! 잊을 뻔했는데요. 은행나무 가로수를 구경하러 종합 운동장 근처에 갈 필요
?가 없습니다. 며칠 전 누군가 잎을 다 털어 버렸어요. 그 누군가를 탓하지 마세
?요. 우리 사회는 그 은행나무 가로수의 정취조차 편하게 누리지 못하게 사람들
?을 내모는 사회입니다. 죽은 여고생이 하늘 나라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
?을 마음껏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