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1주기 – 즐거운 제삿날…

제 목
아버지 1주기 – 즐거운 제삿날…
작성일
2000-10-26
작성자

지난 일요일(10월 22일)에 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벌써 1년이 되었군요…. 정확
하게는 작년 10월 26일에 돌아가셨으니, 10월 25일이 제삿날이지요… 음력으로는 치
면 지지난 일요일(음력 9월 18일)이 제삿날이었구요…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구요?

작년 10월 26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리 형제들이 모여 경황없이 큰 일을 치렀습니
다. 아버지 나이가 있으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몰랐지
요… 부산 누님 집에 놀러 가셨다가 쓰러지신 뒤, 그 길로 석 달을 병원에 누워 계시
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렀죠….. 형님들이 계시는 대전에서요… 우리 형제들은 어떻게 하는 줄도
몰라서 절차도 제대로 밟지 못해 그냥 시체를 거적에 둘둘 말아 묻는 식이었어요…
당연히 다들 불만이 많았지요…. 어머님은 자식들에게 맡겼지만 전통 방식으로, 큰
형님은 기독교식으로, 작은 형님은 무종교, 저야 아무렇게나 편한 대로…. 누님은 불
교식으로…. 결국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장례식이었어요….

그래도 큰일을 치르고 모든 형제들이 모여 다짐했습니다.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더라
도 싸우면 안 된다. 그것이 아버지를 위하고 집안을 위한 것이다…. 자칫하면 돌아가
신 아버지를 위한다며 산 사람끼리 싸우기 쉽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여러 가지를 결정했지요…. 부조로 들어온 돈에서 쓰고 남은 것
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내년에는 어떤 식으로 제사를 지낼지, 누가 주관할지….
그런데 그때 결정한 것 하나가 “앞으로 아버지 제사를 일요일에 지내자, 돌아가신 양
력 날짜 10월 26일 앞에 있는 일요일에 산소에서 만나자, 제사라는 기분보다는 추도일
로 치르자”였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10월 22일)에 충북 옥천군 심천면에서 온가
족이 만난 것이지요…

오랜만에 모처럼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일요일이라서 거의 다 온 셈입니다.. 찾아오
신 일가 친척들도 반가웠구요… 아버님 산소에 절하는 분은 절을 하고, 기도할 분은
기도하고….. 오랜만에 만난 분들은 넉넉하게 이야기도 하고… 산소 여기저기에 대
해 설명도 하고…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 먹었어요… 점심 때였어요… 일요일에 산소에서 만나
니, 꼭 단풍 놀이 온 것 같더라구요… 며느리들이 각자 알아서 해 온 음식들도 넉넉
했지요…. 부산 누님이 떠온 생선회가 단연 인기 1위였습니다… 다들 즐거워했습니
다. 식사 후에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 떨기도 하고요…. 화창한 가을이었어
요… 남자들은 산소 주변에 떼를 입혔습니다… 비료를 뿌리고요….. 올해 다소 모
자란 것이 있었으면 내년에 보완하면 되지요….

앞으로, 우리 어른들이 죽고, 우리 조카가 집안 어른이 되었을 때도, 10월 26일 앞에
있는 일요일에 만나겠지요….. 거기에 가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도 다 있을 테니까요… 더구나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돌아가신 할
아버지 이름으로 대학 졸업할 때까지 장학금을 받습니다. 그것도 작년에 결정하여 지
금 집행하고 있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지난 일요일은 아주 즐거운 제삿날이었어요…. 필요하신 분이 있으실 것 같아, 우리
아들-며느리들이 작년에 상의하여 결정한 내용을 덧붙입니다. 발상을 바꾸면 여러 사
람이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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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제기. 해마다 돌아오는 아버님 기일을 어떻게 치를까?

1) 돌아가신 날 전날(음력)을 제삿날로 잡아 자손들이 모인다.
– 단점 ① 음력으로 따지면 양력 날짜가 해마다 바뀌어 기억하기 어렵다.
②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평일이면 자손들이 모이기 어렵다.
③ 그렇게 되면 참가자가 줄어들고 의미가 퇴색한다.

2) 맏아들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통례이다.
– 단점 ① 맏아들로서는 평생 부담스럽다. 지손은 그 부담에서 자유롭다.
② 종손(맏아들, 맏손주)이 기독교인이면 제사가 끊어지기 쉽다.

3) 제삿날 여러 음식을 장만한다.
– 단점 ① 제사를 지내는 집으로서는 경제적, 시간적, 심리적 부담이 된다.
② 다른 자손이 그 집을 도와준다 해도 역시 부담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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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안

1. 돌아가신 날짜를 양력으로 기억한다.
2. 10월 26일 앞에 있는 일요일에 산소에서 만난다.
(예 : 10월 26일이 일요일이면, 10월 26일날 모인다.
10월 26일이 월요일이면, 10월 25일에 모인다.
10월 26일이 화요일이면, 10월 24일이 일요일이니까 그날 모인다.
10월 26일이 토요일이면, 10월 20일이 일요일이니까 그날 모인다.)
3. 각자 자기 가족이 먹을 것을 가져오되, 젯상에 놓을 음식은 모이기 전에 협의하여
분담한다.
4. 아침 10시에 만나는 것으로 한다.
5. 비가 올 때는 만나기 전에 협의하여 결정한다.
6. 외손, 친손을 가리지 않되, 되도록 식구가 모두 참여한다.
7. 자손이 퍼져 참가자가 점점 불어도, 이 날짜를 기억하여 모임을 지속한다.

장점 :
1. 만나는 날이 일요일이라서 직업에 상관없이 모두 모일 수 있다.
2. 장남, 차남, 남녀 등을 따지지 않아 민주적이다.
3. 1년에 한 번씩(나중에 어머니 기일까지 치면 두 번) 반드시 만나기 때문에 친인척
관계를 알고 정이 깊어진다. (지금 일부 친인척은 몇 년, 몇십 년만에 만나서 잘 알지
도 못한다.)
4. 아버지, 어머니가 시조가 되어, 해마다 자손들이 모여 이 날을 기념할 수 있다.
5. 장학회, 후원회 등을 조직하게 되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 장례를 치르고 남은 돈으로 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규정도 알고 싶으시면
제게 연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