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로 학교를 그만 둡니다..

제 목
이제 진짜로 학교를 그만 둡니다..
작성일
2001-01-24
작성자

제가 지난 가을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오래 기다렸지요..
그런데 경기도교육청에서 여태까지 명퇴 여부를 발표를 하지 않아 답답했는데,
어제 인터넷으로 경향신문에서 퇴직을 확인하였습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중등
신청자 60명을 모두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제 퇴직 소식이 우리 가족에게 설날 선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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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왜 떠날까?

20년 넘게 근무하던 학교를 떠난다. 그런데도 섭섭한 마음보다 시원한 마음이
더 크다. 왜일까? 한때 나는 교육을 신봉하며 살고, 학생을 종교로 여기며 살았
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육이 나에게 짐이 되고 고통이 되었다. 그러므로 퇴직
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세상이 너무나 많이 변했다. 학교 현장에서 나 같은 중견 교사의 입지가 사라졌
다. 옛날에는 중견 교사가 초임 교사에게 존경받을 부분이 많았다. 예를 들어 복
잡하고 골치 아픈 업무 처리를 한 눈에 꿰고 앉아 초임 교사들에게 쉽게 처리하
도록 일러줄 수 있었다. 골치 아픈 학생이 중견 교사 손을 거치면 몰라 보게 순
화되어 초임 교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중견 교사가 젊은 교사에게 업무 처리를 배워야 할만큼 사무가 자
동화되었으며, 골치 아픈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 모든 교사가
헤매고 있다. 지금까지 적용하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에 대처할 수 없
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런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해외 파견 교사 시험을 보고, 외국으로 파견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교사인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골치 아픈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파견 교
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나이를 낮추어 파견 교사 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포기
해야 했다. 45세는 어느 날 갑자기 파견 교사도, 장학사도 할 수 없는 나이였
다.

한 번 떠나기로 마음을 먹자 점점 학교 생활에 정이 없었다. 학교가 많이 황폐해
졌다고는 하나 공교육에서 아직까지는 교사들의 몫이 있는 것인데, 아무런 의미
를 느끼지 못하면서 계속 교단에 서있자니 나는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 같
았다.

그러던 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간이 있으면 아버지 말동무를 해드리려고
했는데, 돈이 많으면 맛있는 것을 사드리려고 했는데, 결국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아버지와 헤어졌다. 교직은 시간과 돈의 여유를 주지도 않고, 인간끼리
정겹게 지낼 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으면서, 내 젊음과 꿈과 자유로움을 깎아먹
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이렇게 살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00년 초 명예 퇴직
을 신청하였는데 예산이 없다고 교육청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지난 가을에
다시 신청한 것을 교육청에서 이번에 받아들인 것이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기만 해왔기 때문에 갑자기 어떤 장사를 하거나, 어떤 사업
을 할 수가 없다. 내 미래가 불안하다. 그래도 나는 내게 새로이 변신할 시간이
있다고 믿는다. 두려워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또 한 가지, 직장인의 슬픔

교직이 전문직이라고 하나, 몸뚱이가 건강할 때까지만 소득이 보장된다는 점에
서 교사는 프로 야구 선수와 건설 노동자나 다름없는 육체 노동자일 뿐이다. 어
떤 사람들은 그 정도 고생하지 않는 직업이 있냐고 하지만, 교직에 몸담고 있으
면 발전을 생각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 세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씀씀이가 커질수록 직장에 매여야 하고, 열심히 일한다고
당장 소득이 더 높아지지도 않는다.

당장 먹고 살기에 바빠 저축은 꿈꾸지 못한다. 저축? 해보았자 아무 것도 할 수
도 없다. 한 달에 20만원씩 5년을 모아야 1200만원. 그러나 1200만원을 채 만들
기도 전에 한 해 전셋돈을 그렇게 올려주어야 한다.

그러니 신용 카드로 물건을 살고, 은행돈을 빌려 집을 사야 한다. 결국 한평생
을 이자 붙여서 밥먹고, 이자 붙여서 잠잔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음 달이 보너
스 달일 때는 이번 달 씀씀이가 크다. 미래에 들어올 소득을 믿고 미리 당겨서
현재를 지탱하고 있었다.

퇴직을 불안해하는 것은 미래에 그나마 현재 같은 삶이 보장되지 않을 것을 두려
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
다. “내일은 낫겠지” 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특히 교사이며 공무원인 사람들은 자기 직업 때문에 속는 부분도 많다. “헌신,
봉사, 사명” 같은 말로 자기에게 최면을 걸고 현실적 욕구를 외면하는 셈이다.
한때는 공무원들이 “헌신, 봉사, 사명”이라는 말을 실천하며, 보람을 느끼던 시
절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같이 사회 보장이 미비한 나라에서는 이런 어휘가 대부분 풍성
한 말잔치로 끝나고 만다. 평생을 교직에 머물다가 학교장으로 정년 퇴직해도,
원래 가지고 있는 재산이 없으면 친구들을 만나 술 한 잔 마실 형편이 되지 못한
다. 은퇴 후 취미 생활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런다고 그런 사람을 사회에서 알아
주는 것도 아니다.

학교를 그만 두고 무엇을 할까?

이민을 가려고 한다. 그런데 이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나이 제한이 있
다. 45세 나이를 뛰어 넘으려면 투자(사업) 이민으로 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민
갈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재주도 익혀야 하고, 돈도 몇 억 원이 있어야 한다.
젠장, 몇 억 원이 있으면 여기서 잘 먹고 잘 살면서, 1년에 몇 차례 슬슬 해외
여행을 다녀오는 편이 낫지. 거길 왜 가냐? 낯선 곳에. 그래도 나는 이민을 꿈꾸
며 살겠다.

외국에 유학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나 되도록 여기서 해결하겠다. 안 가
도 된다면 안 가겠다.

퇴직할 때 받는 돈은 당분간 생활을 보장하겠지만, 평생을 보장하는 밑천이 되
지 못한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돌린다 해도 매달 죽지 않을 만큼 나올 뿐이다.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기는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중에 더 늙어서 추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돈을 많이 벌어야 한
다. 쓰는 것보다 들어오는 것이 많을 때까지는 돈을 벌어야 한다.

따라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낭만적인 꿈(자원 봉사, 저술 활동 따위)은 버리고
나를 위해 좀더 투자하는 시간을 내거나,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시간 여유가 없이 뛰어 다녀야 할지 모르겠
다.

어디에 있든 어떻게 살든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초조해 하는 것은
돈이 없는 것보다 더 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당구를 배울까 한
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운동을 꾸준히 하겠다. 운동을 즐겨서가 아니라 이제는 진짜로 건강이 생
활의 밑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