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님 – 부천에 사는, 민주당 전국구 의원

제 목
이미경 님 – 부천에 사는, 민주당 전국구 의원
작성일
2001-01-21
작성자

1월 13일 토요일 아침, 민주당 이미경 국회의원을 만나러 집으로 찾아갔다. 겨
울이 모처럼 겨울답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엔 눈꽃이 내
려앉고, 온 도시가 눈 속에 파묻혔던 날이었다. 현관 문을 열며 반갑게 맞이하
는 이 의원을 보니 마치 이웃집을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갑고 뻣뻣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따뜻하고 포근한 이 의원의 손이 내 손을 감쌌다. 처
음 만나는 것인데도 ‘참 예쁘다’는 생각에 한동안 맞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직접 끓여온 유자차를 마시면서 첫 질문으로 함께 사는 시부모님과 사이가 어떠
냐고 물었다. 그러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어머님을 아주
자랑스럽게 소개하였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돈 버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도 시어머님은 며느리가 하는 일에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신문에 조그맣게
난 기사라도 꼭 스크랩을 해주셨단다.

‘요즘 세상에 태어났으면 나도 너처럼 살았을 것’이라며 힘들 때일수록 격려를
해주신 시어머님 때문에 집안 일은 잊고 그 동안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했
다. 며느리는 시어머님께 옷을 화사하고 예쁘게 입게 하고, 시어머니는 ’24시간
을 함께 있으면 서로 불편하겠지’라고 할 만큼 서로 솔직하게 살면서 고부간의
갈등이 저절로 녹아 사라졌나 보다.

0 학생 운동 때 만난 남편 호남인 이창식(새마을 중앙회 사무총장)씨와는 영호
남인으로 만나 사는데 가족간의 갈등은 없는지? 다시 태어나도 부부로 만날 것인
지?
– (망설이지 않고) 다시 태어나도 부부로 같이 살 겁니다.

0 외조를 잘 해주시는 남편에게 그런 질문을 해도 과연 같은 대답을 하실지?
– (조용히 웃으며) 영호남인으로서 가족 안의 갈등은 전혀 없었어요. 친정 쪽
주변 사람들의 비판은 조금 있었지요. 그래도 우리의 생각을 서로 얘기했고, 그
럴 때마다 남편은 기분 나빠하거나 속상해 한 일은 거의 없었어요.

0 15대 국회 때 동티모르 파병 동의안에 단독 찬성표를 던진 결과로 한나라당에
서 제명되었는데 평소의 소신에 따른 것인지? 한나라당과의 거리감 때문에 당적
을 바꾸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는지?
– (계속 진지하게 답변을 해주던 표정이 갑자기 결연하게 바뀌며) 당적을 바꾸
기 위한 의도적 행동은 전혀 아니었어요. 노사정, 전교조 문제처럼 동티모르 문
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였고, 세계 인권 회의에 참석해 동티모르 인권
상황에 대해 더 자세한 실상을 알고 있었어요. 파병이 옳다고 생각해 동의했습니
다.

0 시민운동,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회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일
은?
– 10년 전쯤 정신대 문제를 역사의 전면에 올려 놓고,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개개인의 자존심과 인권을 회복 시킨 일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보람
이었습니다. 저도 그때 인생관을 새롭게 다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어요. 자신을
한사코 드러내길 싫어하던 할머니들이 공개적으로 신념에 찬 말씀을 하며 당당해
진 모습이 정말 기뻤어요. (그때 그 일들이 생각나는지 흐뭇한 웃음이 입가에 번
졌다.)

0 우리 나라 몇 안 되는 여성의원으로서 겪었던 좌절이 무엇인지?
– 여성 국회의원으로서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지만 초선 의원일 때 공무원들이
남성 국회의원과는 다르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실력으로 이
겨 나가리라 생각했어요. 끈질기게 추적하고 성실하게 접근하며 실력을 쌓아 가
다 보니 그런 어려움은 없어졌지만 정책 결정이나, 정치 구조 문화에 아직 큰 힘
을 줄 수 없는 것이 아쉽지요.

0 학창 시절은 어땠어요?
– 내 생애에 가장 큰 행운이 ‘이화여고 학생이 된 것’이라 할 만큼 학창 시절
이 좋았어요. 30년 전 이화여고는 학교 중심이 아니라 학생 중심이었지요. 모든
눈높이를 학생에게 맞추어 더울 땐 조회도 그늘에서 하고, 학생이 춥다고 생각되
면 겨울 코트도 바로 입게 하고 난방도 해줬어요. 옷도 자유롭게 입게 하고 머
리 길이, 색깔있는 옷도 학생 스스로 알아서 하게끔 했지요. 그런 것들을 통
해 ‘우리는 존경받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어른
이 되어서도 남을 존중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0 요즘 학교가기 싫은 학생들이 늘고 있는데, 두 딸은 어떻게 키웠는지?
– 자녀 교육은 학교나 집에서도 완벽하게 해주지 못한 것 같아요.(웃음) 소질
이 무엇인지 찾아 주진 못했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면 무엇인지 스스로
찾으라고 했어요. 그 대신 우리 애들이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이라면 적극적 지
원했지요.

끝으로 이 의원은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며 여성들도 정치 분야
에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고 했다.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력만 있으면 직업은 다양
화 되어있으니 여성도 사회에 참여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해 재선에 당
선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지만 프로 국회의원 답게 의정 활동을 할 것이며, 특
히 인권 문제에 주력할 예정이라는 이 의원의 등 뒤로 각종 카드와 연하장이 책
장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작은 카드 한 장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집안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들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른 것이 없
었다. 이런 검소한 생활을 바탕으로, 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의 작은 소리 하나
하나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국회의원, 희망의 끈을 놓쳐 버린 국민에게 희망을 주
는 국회의원으로 남길 바랐다. 그리고 국회로 출근하는 이 의원과 나란히 현관문
을 열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