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 2 – 팍상한 폭포

제 목
필리핀 여행기 2 – 팍상한 폭포
작성일
2001-02-9
작성자

즈므신 따꺼, 마간당 우마가 — 필리핀 아침 인사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방에서, 호텔 로비에서 한 커트씩 찍었습니다.

아, 우리를 안내하는 가이드 이름은 폴 김이라고 합니다… 미스터 김은 필리핀에서
일한 지 3년이 되었다고 하는데, 코미디언 백재현과 동창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31살
이라고 하는데, 나이보다 젊어 보입니다… 원래는 사진 작가인데, 아이엠에프 사태
때 이곳으로 와서 가이드로 정착하였습니다… 아주 열심히 사는 분이고, 섬세하면서
도 진짜 사나이입니다.. 나중에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작품 사진을 다시 찍겠다고 합
니다….

오늘 갈 곳은 “팍상한”이라는 곳입니다… 첫날 아침은 좀 늦게 출발했습니다.. 토요
일인데, 차가 많이 밀렸습니다. 필리핀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데, 승용차, 트럭, 승합
차, 버스, 지프니(필리핀형 지프차)가 한꺼번에 교외로 몰리면서 도로가 꽉 막혀 고생
이 많았습니다. 필리핀은 도심뿐만 아니라, 교외에도 못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빈민촌)이 많았습니다.

경제 사정이 무지하게 좋지 않은 듯합니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 고층에서 아래를 내려
다 보면 거의 모든 집이 함석(양철) 지붕입니다. 양철이 쉬 더워지기도 하지만, 밤이
면 쉬 식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집들이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않아 많이 낡았습니
다. 다른 호텔도 새로 증축한 곳만 페인트 칠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퇴색하고 칠이
벗겨져 보기에도 흉합니다. 모든 물자가 귀하던 우리 나라 60년대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차창 너머로 보이는 필리핀 농촌은 우리네 농촌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모내
기를 한 논이 많았는데, 1년에 3모작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아
이들도 우리네 농촌 아이들과 비슷합니다.

뒤늦게 팍상한에 도착하였습니다. 필리핀 음식을 뷔페 식으로 받아 둥그런 테이블에
앉아 먹었습니다. 음식을 먹는 동안 필리핀 음악인 세 사람이 악기를 들고와 귀에 익
은 한국 노래며, 필리핀 노래를 해주었습니다. 1달러밖에 안 되는 팁을 받으면서도 아
주 열심히 좋은 노래를 들려 주었습니다. 잠깐이나마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했
지만,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린다는 것이 영 개운치는 않습니다…. 그게 한국 사람 마
음입니다. 얼마 뒤에 그런 한국 사람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뒤에
서 이야기할게요. ^^;
밥 먹을 때 찍은 사진들입니다.

아래 사진은 배를 타기 전에 모두 모여서 한 방 찍은 것입니다.

팍상한은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영화를 찍은 곳이고, 얼마 전 이 근처에서 가수 조성
모의 월남전 뮤직 비디오를 찍었다고 합니다.. 여기는 몇 만 년 전에 땅이 갈라지면
서 벌어진 양쪽 절벽 사이로 강이 생기고 강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깎아지른 절벽,
울창한 숲이 아주 환상적이었습니다.

강 하구에서 팍상한 폭포가 있는 곳까지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관광 코스입니
다. 하구에는 필리핀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강 옆에 집들이 있는데, 우리가 오
늘 팍상한까지 오며 보아 왔던 집으로 미루어, 이 집은 제대로 된 집이고 부잣집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이 빨래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작고 늘씬한 배에 손님 두세 명이 타면 배 앞뒤에 보트맨 둘이 노를 젓습니다.. 순전
히 사람 힘만으로 손님을 태우고 강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출발할 때 찍은 사진입니
다. 밝은누리는 노란 우비를 사서 입었습니다.

이 배는 강폭이 넓어 물 흐름이 느릴 때는 보트맨들이 노를 젓지만, 강폭이 좁고 물흐
름이 빠를 때는 보트맨이 물속에 들어가 배를 밀거나 잡아 당겨 배를 끌고 올라갑니
다… 손님인 우리야 즐겁지만, 보트맨들의 고생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한 시
간 가까이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즐겁던 마음이 사라지고,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
다..

어쩐지, 가이드가 여행자들의 지갑을 모두 걷더라니…. 가이드가 일괄적으로 팁을 주
었다고 하지만, 한국말로 “힘들다, 죽겠다”며 노를 젓는 보트맨을 보면, 불쌍해서 지
갑을 열고 돈을 막 퍼주고 싶습니다… 보트맨 말이라는 것이 속이 뻔히 보이는 것인
데 말이지요… 결국 원래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면 가이드에게 맡겼던 지갑을 찾아
돈을 줍니다.. 가이드 말로는 한국 사람들은 없으면 꿔서라도 준다고 합니다… 사실
김동인 선생님도 그랬고, 저도 그랬습니다… 일행 중에서도 제가 제일 많이 썼습니
다.. 장하다.. 한국인… ㅠ.ㅠ

어쨌든 팍상한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고 일행들이 모두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했습니다. 이 폭포 물을 맞으면 딸을 낳는다고 합니다. 나는 능력(?)이 없으나, 특히
김남원님 부부는 젊은 분들이니 기대해 볼 만합니다.. 뗏목을 타고 가서 폭포물을 맞
는데, 그 떨어지는 힘이 엄청납니다….

배를 타고 내려올 때는 아주 신납니다. 좁고 빠른 강폭을 부딪치지 않고 스치듯이 지
나는데, 보트맨들이 단지 노 하나로 부리는 기술입니다. 예술입니다…. 그때는 물이
튀기고 옷이 물에 젖어, 사진을 못 찍습니다. 넓은 곳에 나와 출발지로 돌아가는 배
를 찍었습니다.

팍상한에서 마닐라로 돌아올 때도 교통 체증에 걸려 밤 늦게서야 밥을 먹었습니다..
한식집에서 해물탕을 먹었습니다… 이때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도 서로 말을 걸지 않
는 불편한 관계를 생각하여, 우리 팀이 아주머니 팀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제안하였습
니다… 결국 한국인을 상대로 하는 노래방을 통째로 500달러에 세내어 밤새도록 미
친 듯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어느 분은 즐거웠다고 하고,
어느 분은 교사가 그럴 수 있냐고 했습니다.. 온 몸을 던졌는데… ㅠ.ㅠ 밝은누리는
나를 보며 지난 14년간 아빠에게 속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 일행 중에도 후유증을 남긴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팀은 일찍 들어가 잤습니
다. 서로 삐져서 등을 돌리고 잤겠지요… 새벽 한 시에 김남원님 부부, 김대순님,
나 이렇게 넷이서 호텔에서 나와서 호텔 근방에 있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남자들만 호텔로 들어와 게임룸에서 구슬놀이(일명 빠찡꼬)를 하였습
니다. 이때 김남원님이 대박을 터트려 기계 꼭대기에 있는 빨간 불이 뱅뱅 돌았지요.
모든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종이에 사인을 하고 현금과
바꾸어서 나왔는데 6300페소를 받았으니까 우리 돈으로 한 30만원쯤 되었습니다…

물론 그냥 잘 수야 없지요…. 그 편의점에 다시 가서 맥주를 마시다가 아침 다섯 반
에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필리핀 둘째 밤은 초저녁부터 술로 시작하여 온 밤을 술
로 절어 보냈습니다…. 김대순님과 동행하며 그 술을 다 받아먹은 저도 대단했습니
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