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여행기 4 – 귀국하면서…

제 목
필리핀 여행기 4 – 귀국하면서…
작성일
2001-02-18
작성자

1월 29일, 귀국하는 마지막 날은 주로 쇼핑을 하였습니다. 해외로 나왔다가 귀국
할 때쯤이면 아는 사람에게 선물할 일이 걱정되지요… 해외에 처음 나오면 더
욱 그렇습니다. 면세점, 토산품 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고, 한국에 가서 마
셔보자고 저는 토속주 몇 병을 샀습니다.

아퀴노 공항으로 가는 길에 산티아고 요새를 들렀습니다.. 필리핀을 정복한 스페
인 통치자가 돌로 성을 쌓고 그 안에 주거지, 교회, 학교를 비롯한 여러 시설을
지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들른 곳은 스페인 총독이 거주하던 곳이지요. 감옥도
있고 요새를 지키는 군인들 숙소도 있습니다. 2차 대전 때는 일본군 총사령부로
쓰였다고 하나, 지금은 축성된 돌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가운데에 있는 원형
돌 벽에 기둥이 있고 이곳을 몽땅 덮는 커다란 원형 지붕이 있었다고 하는데, 오
른쪽 사진처럼 지붕을 받치던 흔적만 약간 남아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서둘러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지난
며칠을 정리하였습니다. 모두 아무 탈이 없어서 다행이었지요.. 물론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에도 해프닝이 있었으나, 다녀온 사람들의 추억으로만 기억하겠습니
다.. 궁금한 분은 개인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사진 제모습은 관광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찍은 것이고, 최의억님 색시와 김동인님 색시는 공항에
서 기념으로 찍은 것입니다…

여행을 끝내고….

필리핀 여행은 처음이라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애초 저
는 필리핀을 여행하며 필리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다고 합니다. 위험해서 다닐 수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필리
핀 뒷골목을 거닐며, 서민들이 먹는 음식을 직접 사먹고 싶었지요…

그런데도 여행이 다 끝났는데도, 이국적이고 낯선 관광지를 다녀왔다는 것뿐이
지, 필리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필리핀 사람을 본
격적으로 만난 적이 없으니까요.. 관광 버스 창 너머로 보았던 모습들… 빈민
가, 잡상인… 그 사람들 사진은 일부러 찍지 않았습니다.. 사진으로 남겨 놓
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필리핀 여행이 제게는 우울한 편이었습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아무라
도 막 주고 싶을 만큼 필리핀 사람들이 너무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옛날에
는 우리보다 국민 소득이 높았던 때가 있다고 하던데, 지금은 사회가 산업화되
지 않아 무슨 일을 하고 싶어도 할 만한 일거리가 없습니다.

가난에는 자존심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미군들이 차를 타고 가며 던져준 초콜릿과 껌을 주워먹던 추억이 떠올랐지
요… 과자를 던져주며 우리를 바라보던 그때 미군들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어
요..

고급 식당에서 만난 필리핀 부자들은 우리가 길거리에서 보았던 필리핀 가난뱅이
들과 인종이 다르다고 여길 만큼 아주 예뻤습니다. 얼굴이 깨끗하고 뽀얗고, 차
림새가 깔끔하고, 입가에 웃음이 담겨 있습니다. 필리핀인 한 부류는 고급 식당
에 앉아 시켜놓은 음식을 먹다 남기고 떠나고, 한 부류는 외국 관광객에게 구걸
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처럼 이곳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깊은 것 같
았습니다.

미국에서 골프 선수로 유명한 필리핀계 제니퍼 로살레는 부잣집 딸일 것입니다.
필리핀 사람들 대부분 골프가 뭔지도 모르고 사는데,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칠
수 있고, 미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부잣집 딸이 아니고서는 누리기 어렵지
요…. 이 사진은 필리핀 영자 신문에 난 모습인데, 우리로 치면 박세리를 보도
한 셈이지요…

제가 한국에서 돈 많은 사람들이 돈을 너무 쉽게 쓴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
요.. 그 사람들은 술집에서 몇백 만원짜리 양주를 마시며, 몇 백만원을 팁으로
주며, 천 만원이 넘는 옷을 사 입는다고 하지요… 그러나 제가 관광객으로 필리
핀 상류층이 드나드는 호텔에 머물면서 돈을 쓰고 보니, 우리 나라 부자들이 과
소비를 하면서 아무 죄의식이 없을 법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자들은 자기 생
각에 물건이 싸니까 사고, 필요하니까 사고, 돈이 있으니까 쓰는 것이지요… 우
리 필리핀 관광객이 필리핀 사람들 생활 수준을 생각하여 소비를 자제하지 않는
것처럼….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 자기가 놓인 처지를 과감하게 떨쳐버리려 하지 않고서
는 질긴 고리를 끊기 어렵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힘닿는 대로 아이들이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십시오… 할 수 있다면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십시오… 더 넓은 세계로 보내세요… 부모와 자식 두 세
대가 힘을 모으면, 커다란 성공은 이루지 못한다 해도 작은 성공은 만들 수 있습
니다… 물론 세 세대가 힘을 모으면 대단한 집안을 일굴 수 있습니다….

참고 삼아 말씀 드리면 필리핀에 한국 교민이 2만 명쯤 되는데, 1만 명 정도가
유동 인구고 그 대부분이 유학생이라고 합니다… 치대생, 영어 어학 연수생이
많다고 하네요..

아래 그림은 이번 여행 중에 밝은누리가 심심할 때 호텔 메모지에 그린 것입니
다…

아래 그림은 버스에서 메모장에 그린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