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 – 자신의 틀을 깨트리자

제 목
첨삭 – 자신의 틀을 깨트리자
작성일
2004-08-20
작성자

자신의 틀을 깨트리자

전소연(대일외고 2학년)

(1) 처음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라디오와 같은 음성 전달 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은 시각이라는 새로운 전달 방식에 깜짝 놀랐다. 흑백 텔레비전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바뀔 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보는 창이 조금씩 커져 감에 따라 그만큼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이런 발전이 사람들을 놀랍게 하였다. 흑백 텔레비전에서 보지 못하던 예쁜 색들이 컬러 텔레비전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시각이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것이다.

(2) 우리가 살면서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는 문제들이 있다. 실상은 그렇지가 않은데 말이다. 가장 보편화된 이런 류의 문제는 남녀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다. 남성다움, 여성스러움이라는 단어의 존재 자체가 이런 사실을 잘 반영한다. 이외에도 자신도 모르게 쌓아놓은 현대판 신분의 벽도 있다. 학벌이나 그 사람의 경제력 등으로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해보고는 한다. 그리고 자신과 다른 부류라고 판단되면 은근히 거리를 두기도 한다.

(3) 사람들은 이런 판단을 내리기 위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설정해 놓는다. 그 기준에 맞춰 세상을 판단하다 보니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다.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눈에 확 들어오는데도 한 가지 시각을 고집해서 보면 보이지가 않는다. 그 보이지 않는 면을 발견할 때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데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더 깊게, 다양한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고정 관념이나 편견을 잠시 접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된다.

(4) 이집트 벽화를 본 적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왜 얼굴, 몸통, 다리가 다 따로 놀고 있는지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다시점을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 화가는 나름대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잘 부각시키기 위해 얼굴을 옆에서, 몸통은 앞에서, 다리는 다시 옆에서 본 시점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앞이면 앞, 옆이면 옆 등 한 가지 시점을 고집하는 우리는 그 그림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점의 변화에 따라 그 그림은 괴물 같은 모습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아름답게 인간을 그려놓은 귀중한 예술품이 될 수도 있다.

(5)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틀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틀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고 편협한 사고 속에 갇혀 산다. 점점 다원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그런 틀은 많은 기회를 앗아가는 장애물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들은 다양한 시각에서 관찰되어야 한다. 열린 눈으로 모든 다양함을 수용할 줄 알아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컬러 텔레비전이 시장을 점유하고 흑백 텔레비전이 사라졌듯이 말이다. 자신의 틀을 고집하지 말고 과감히 그 틀을 깨고 세상을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보자. 그러면 비로소 진정한 세계의 모습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강평)
전소연 학생은 글을 다섯 단락으로 나누었다. 첫 단락을 서론 단락으로 잡아 시각이 바뀌면 세상도 새로워진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결론 단락에서 무엇을 주장할 것인지를 암시하여 출발이 아주 순조로웠다.

끝 단락에서 전소연 학생이 주장하는 것을 찾아보면 ‘다양한 시각, 열린 눈, 그 틀을 깨고’ 같은 말들이다. 즉, ‘사람들은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론에서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야 하는 근거, 세상을 편협하게 살 때 발생하는 문제점 따위를 거론하여야 했다. 그런 원리에 따르면 둘째 단락은 본론 1이 아니라 서론 단락이고 현실 사회 현상을 계속 거론할 뿐이었다.

그리고 셋째 단락도 본론 2가 아니라 결론 단락이다. 셋째 단락 뒷 부분에 결론에 담아야 할 주장을 서술하였다. 특히, 맨 마지막 ‘고정 관념이나 편견을 잠시 접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된다.’라는 문장은 결론 단락에 옮겨도 되는 말이었다.

넷째 단락이 유일하게 본론 3 노릇을 하였다. 편협함에서 벗어났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서술하여 결론의 근거 구실을 제대로 하였다. 이집트 벽화의 특징을 서술하면서, 관점이 다르면 같은 대상도 여러 모로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고 지적하여 아주 참신하였다.

전소연 학생은 아는 것이 많아 쓸 것이 풍성한 학생인데도 글의 짜임새가 엉성하다. 그것은 글 전체의 일관성을 놓치기 때문이다. 서-본-결 단락의 성격을 모른 체 주어진 원고량을 채우기에 바쁘다. 따라서 이렇게 일관성을 놓치는 학생들은 긴 글을 쓰려 하지 말고 글 전체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큰 줄기(글의 뼈대) 잡는 훈련부터 해야 한다. 뼈대가 부실한 집에 자꾸 살을 붙여 보았자 제대로 된 건물을 지을 수 없다.

특히 현실(서론)을 잘 알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결론)까지 알면서, 왜 그렇게 대처해야 하는지(본론)를 언급하지 못한다. 본론이 없다는 것은 그 문제를 놓고 고민(사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당연하게 여겨온 일들도 이제부터는 ‘왜 그래야 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애냐하면 논술 시험은 본론에 담긴 사고의 깊이를 평가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

서술어가 ‘-이다, 있다’로 끝나는 문장이 많았다. 특히, 전소연 학생은 서술어에 ‘말이다’를 붙이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