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만에 만난 여학생 제자들…

제 목
23년만에 만난 여학생 제자들…
작성일
2001-12-24
작성자

지난 수요일(12월 19일)에 제자들이 찾아 왔습니다…
제가 졸업하던 1978년 3월에 여주여종고에서 1학년 미반(1,2,3,4반 대신 진선미
정 반이 있었습니다.) 담임으로 처음 만난 학생들이지요..

한껏 멋을 내고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누구인지 못 알아보겠더라구요…
길거리에서 만나면 누구인지 못 알아보겠습니다..
반 말을 해야할지, 존대말을 해야할지……

그러다가 하나하나 자기 이름을 대는데 옛날 생각이 나고,
어린 시절 눈매며 얼굴 윤곽이 기억 속에서 살아 나더군요…

20년 세월이 그렇게 흘렀군요..
이 제자들이 61, 62년생들이었으니 마흔이나 마흔 하나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쁘고, 30대로 보이는 제자들입니다만…

신연숙 – 부반장이었지요.. 공부 잘 하고, 똑똑했지요… 얼마 전에 시집 가서
뒤늦게 아들을 낳았답니다…

강희선 – 키가 작은 학생으로 말이 없는 편이었어요.. 순하다고 할까, 천상 여자
라고 할까.. 그런데 지금은 수다쟁이랍니다…

장경옥 – 학급 서기였어요.. 매일 학급일지를 들고 오던, 선한 눈매-큰 눈이 생
각나네요.. 그때 똑 소리났는데, 친구들 말로는 지금도 마찬가지랍니다…

원수희 – 공부를 잘 못했어요.. 그리고 겁이 많았지요.. 법이 없으면 안 됩니
다. 너무 순해서 법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고향에서 계속 살고 있답니
다. ^^*

정미숙 – 제게 차가웠지요. 그래서 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때 자기가 조숙
했다네요…. 여학교에 부임해온 총각 선생님을 이성으로 보았던 모양이에요…
어쩐지 제 주변을 뱅뱅 돌더라니…. 지금까지 미혼이랍니다….

옛날 이야기를 하니, 그래도 그때는 참 순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면
서도 좋아한다는 표현을 못하고, 속으로 앓고… 저나 학생들이나 그때 용기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삶이 달라졌을 겁니다….

이야기 중에 팬티가 비치던 바지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때는 민방위 복장이 공무원 지정복이기도 하던 시절이었지요… 텔레비전에서
보았을 겁니다… 안쪽 남방 칼라를 꺼내 공무원복 칼라 위로 겹쳐 입는 민방위
복을요…..

교련 검열을 할 때나, 학교 단체 행사가 있을 때 많이들 입었지요. 물론 평소에
도 많이 입고 다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도 양복점에 가서 하나 맞추었습니
다… 사람들은 대개 파란 기운이 도는 회색으로 맞추어 입는데, 저는 고운 미색
(아주 연한 노란색)으로 맞추었습니다…. 남들과 다르고도 싶었지만, 한편으로
는 민방위복이 꼭 회색이어야만 하냐는 오기도 있었지요….

그 미색 민방위복을 입고 학교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옷감이 얇아서인지,
그 옷 안쪽에 있는 팬티가 밖으로 다 비쳤습니다… 그날 하루 종일, 교실에 있
는 여고생들이 다 자지러졌지요…. 총각이… 웬일이니….싶었겠지요…

지금 학생들은? 그러려니 할 겁니다…….

그것 참, 곤란하대요… 옷을 갈아 입으러 집에 다시 갈 수도 없고… 그런데 그
날 오후에 교감이 부르더니, 옷을 고쳐 입을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퇴
근 후 곧장 양복점으로 가서 상의는 놔두고 바지에만 안감을 댔습니다….

그렇게 고쳤는데, 이번에는 무릎까지 댄 안감과 바지 주머니가 비치는 겁니다…
결국 그 옷은 그것으로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단 두 번 입고 그 뒤로 그 옷
을 못 입었습니다…ㅣ

제자들 때문에 옛날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이렇게 만
나니 좋습니다… 좋지요? 희선이가 묻대요… 그럼 좋지…. 제가 대답했습니
다…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습니다… 멀어져 가는 제자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서 잘 가라는 소리도 변변히 못하고 연신 손만 흔들다가, 애꿎은
우리집 개만 끌어 안았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주소도 연락처도 묻지 않았네요…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 두
었으면 좋았을 텐데 싶기도 하구요….